소설/기억의 주인_다음 이야기

04. 반격 준비 下

지혜의 여신 2009. 8. 7. 13:05

-수암 음악당-

 

금요일밤 뜻깊은 공연을 보기위해 사람들이 입장하고 있다.
오늘 공연할 달동네 빈민촌 청소년들로 구성된 실내악단은 잔디가 근무하는 복지관과 신화그룹의 메세나 협약에 따라 악기를 후원받고 있었다.
리라와 수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실내악단의 음악감독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인연으로 데뷔 공연 겸 자선 공연을 수암 음악당에서 하게 되었다.


 

상류층 인사들은 오늘 공연이 금잔디와 구준표, 윤지후의 특별한 관계로 성사되었음을 알고 대거 참석했다.

공연 전이라 잔디와 리라는 리허설을 끝낸 후 대기실에서 실내악단 단원들을 독려하느라 로비에서 찾을 수 없었다.

 

F4는 흐뭇하게 몰려드는 관객들을 바라보다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돌아다니는 가을과 마주쳤다.
가을은 오늘 개인 블로거로서 사진 촬영 허가를 받은 상태였다.

 

이정: 가을아, 사진 많이 찍었어?
가을:(생긋 웃으며) 아까 리허설 하는 건 좀 찍었어요. 역시 신화가 후원한다니깐 사람들이 많이 몰려드네요.
준표: 당연하지. 첨엔 좀 반신반의했는데 이 메세나 후원으로 신화의 이미지도 확실히 개선되긴 했어.
지후: 애들한텐 아주 좋은 추억이 되겠지. 자신감도 좀 생길 거고.
우빈: 이 공연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일심도 메세나 후원을 진지하게 검토할 거야.
가을:(얼굴 환해지며) 와~ 정말요? 그럼 진짜 좋겠네요.

 

F4와 가을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석영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석영:(흐뭇해하며) 아주 멋진 공연을 기획했구나.
지후:(놀라움 숨기지 않고) 할아버지! 언제 오셨어요?
석영: 지금 막 왔다. 이렇게 좋은 공연을 놓친다면 후회할 거 같아서 진료소 사람들이랑 함께 왔다.
가을:(환하게 웃으며) 잘 오셨어요 할아버지.
준표:(씩 웃으며) 전직 대통령까지 오셨으니 내일 아침 신문에 좋은 기사가 많이 나오겠는데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석영: 허허 녀석. 언제 이렇게 재빨리 손익계산을 할 정도로 큰 게냐?
서현: 그러게나 말이에요. 마냥 꼬맹이들일 줄 알았는데 말이죠.

 

어느 틈에 서현이 생글생글 웃으며 석영의 옆에 서있었다.
F4와 가을은 놀란 얼굴로 서현을 바라봤다.
 
지후: Ca fait longtemps. Ma reine (오랜만이야 내 여왕님)
서현: Ca fait longtemps. Mon prince (오랜만이야 내 왕자님)

       (모두를 바라보며) 오랜만이야 모두들. 얼굴 보아하니 다 잘들 지낸 거 같네.
우빈: 우와~ 누나 정말 오랜만이에요. 언제 한국에 왔어요?
준표:(툴툴) 거 왔으면 왔다고 말을 하지. 갑자기 불쑥 나타나서 얼마나 놀랬는 줄 알아?
이정: 여전히 아름다우신데요 누나. 근데 오늘 공연은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석영: 오늘 아침에 진료소에 찾아왔길래 같이 오게 됐다.
      (준표 보고) 서현이까지 왔으니 사람들 관심이 더 커질 것 같지 않으냐?
준표: 예, 뭐 그건 그렇겠죠 하하하.

 

가을은 잔디로부터 서현이 지후의 첫사랑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살짝 지후의 눈치를 살폈다.
지후는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고는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얘기듣던 대로 여신이 강림했다는 느낌이 가장 먼저 들어서 신기하기도 하고 황홀한 기분도 드는 가을이었다.
서현은 가을을 보고는 상냥하게 인사를 했다.

 

서현: 근데 아가씨는 처음 뵙네요. 민서현이라고 해요.
가을:(당황) 예? 아 저는 추가을이라고 합니다. (고개 꾸벅)
지후:(팔을 들어 가을의 어깨를 감싸며) 내 동생이야.
서현:(눈 커지며) 동생?
지후: 나랑 의남매의 연을 맺은지 꽤 됐어. 잔디 친구이기도 하고.

 

이정은 지후가 가을의 어깨를 감싸는게 맘이 들지 않아 가을의 팔을 잡고 제 옆으로 끌어당겼다.
가을은 당황해서 지후와 이정, 서현을 번갈아봤다.

 

이정: 그리고 제 여자친구에요 누나.
서현:(놀라움 드러내며) 정말? 어머 이거 정말 반가운 소식인 걸. 언제부터 서로 연을 맺은 거야?
우빈: 그게 또 설명을 하자면 하룻밤도 모자란다니까요.
준표: 그러게. 온갖 생쇼가 다 있었다니까.
서현:(석영 보며) 할아버지, 왜 가을씨 얘기는 안하신 거에요? 저 정말 놀랐잖아요.
석영:(사람좋은 웃음) 손녀가 생겼다고 말을 하면 며느리로 오해할까봐 말이다, 허허.
       (살짝 귓속말로) 사실 며느리감은 따로 있단다. 나중에 보여주마.
서현:(환하게 웃으며) 정말 잘됐네요. (가을 보며) 가을씨, 지후랑 이정이가 잘 대해줘요?
가을: 예? 예... (배시시 웃으며) 지후 오빠도 이정 오빠도 저한테 너무 잘 대해줘서 어쩔땐 부담이 갈 정도인걸요.
준표:(한숨쉬며) 잔디밭이 저렇게 예쁘게 말하면 얼마나 좋을까 에휴~
우빈:(짖궃게 웃으며) 금잔디 성격 뻔히 알면서 바랄 걸 바래 구준표.
지후:(싱긋 웃으며) 염려 마 서현아. 잔디도 잔디지만 가을이 덕분에 나 정말 성격 둥글어졌거든.
서현: 정말이야? 못믿겠는데. (석영 보며) 할아버지, 정말 그래요?
석영:(고개 끄덕) 많이 나아졌지. 진작에 잔디랑 가을이 모두 손녀로 입양했을 걸 그랬다고 후회했단다 허허.

 

주위 사람들은 석영과 F4, 서현, 가을의 이야기를 엿듣고는 충격에 휩싸였다.
모두 F4가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가을에 대한 이야기를 중단하지 않고 계속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잔디가 워낙 처음에 사교계에 적응하지 못해 고생했던 터라 이정은 가을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전시회와 수암의 행사, 준표와 잔디가 참여하는 파티를 제외하면 파트너 없이 공식행사에 참석했었다.
(사실 지후도 리라를 보호하기 위해 F4가 직접적으로 연관된 행사가 아니면 혼자 참석했다.)
그래서 가을에 대한 소문이 잠시 상류층 사이를 떠돌아도 곧 시들해지곤 했었다.  
가을이 금잔디의 친구라서 F4와 함께 있는게 아니냐는 의견이 분분했었고, 이정은 그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채 자신에게 다가오는 여자들에게 단호하게 거절의사를 밝히기만 했었다.

 

그런데 오늘밤 민서현에게 하는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저 가을이란 여자는 단순히 금잔디 친구가 아니라 윤지후의 의동생일 뿐만 아니라 소이정이 본인 입으로 여자친구라고 밝히니 정말 사교계 톱뉴스였다.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 눈길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인지 못한 가을은 공연이 곧 시작된다는 종소리를 듣고는 사진을 찍기 위해 모두에게 인사하고는 재빨리 대기실로 뛰어갔다.
F4는 주위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만족스럽게 웃으며 석영, 서현과 함께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공연은 예상보다 훨씬 수준이 높았다.
신화와 수암이라는 이름에 끌려 참석한 관객들에게 실내악단은 모짜르트의 '디베르트멘토 17번 K.334' 3악장을 시작으로 비발디의 '사계' 가운데 여름 1,2,3악장을 연주한 다음 중간에 쉬는 시간이 끝난 후 차이코프스키의 '플로렌스의 추억'을 들려주었다.

매 악장이 끝날 때마다 관객들은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로 실내악단의 멋진 연주에 화답했다.
잔디와 리라를 비롯한 자원봉사자, 가을은 감격의 눈물을 살짝 내비쳤다.
준표 역시 만족스럽게 관객의 달라진 반응을 지켜보았다.
오늘의 자선공연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이 메세나 프로젝트를 우려섞인 시선을 보냈던 임원들에게 멋지게 한방 먹였기 때문이 기분이 매우 좋았다.
 
앵콜로 피아졸라의 '리베르 탱고'와 가르델의 'Por Una Cabeza'를 연주하자 탱고의 매력에 빠져든 관객 일부는 기립박수로 오늘의 멋진 공연을 극찬했다.
실내악단이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무대로 내려온 후, 잔디와 리라, 가을은 학생들을 먼저 보내고 로비에서 F4와 석영, 서현과 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공연을 준비했던 사람들이 너무 지쳐서 축하연을 할 기운이 하나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준표, 지후, 이정이 자신들의 여자친구를 데려다준 것은 물론이었다.

 

 

 


-준표의 집-


다음날, 잠에 빠져있는 준표를 깨우려는 듯 전화벨 소리가 계속 울렸다.

개인적인 용도로만 쓰는 휴대전화인 탓에 일하는 사람들은 감히 방으로 들어가서 전화를 대신 받을 생각을 못했다.

예전에 눈치없는 신참이 잔디 전화를 대신 받았다가 준표가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는 당장 해고시켰던 쓰라린 과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어이 깨우고야 말겠다고 결심이라도 한듯 끊임없이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에 준표는 무시하고 계속 자려했던 결심을 접고 더듬더듬 손을 뻗어 휴대전화를 집었다.

발신인도 확인하지 않고 버럭 화부터 냈다.

 

준표:(짜증 가득) 누구야 아침부터!!

재경:(경쾌하게) 헤이 쭌~ 이제 한국시간 7시거든. 이만 일어나지 그래?

       차기 신화 총수가 그렇게 잠이 많아서야 쓰겠어?

 

준표는 오랜만에 듣는 재경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잠이 확 사라지는게 느껴졌다.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는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준표: 몽키 너 어쩐 일이냐?

재경: 아주 재미있는 소문을 들어서 사실 확인을 좀 하려고.

준표:(어리둥절) 무슨 소리를 들었길래 아침부터 전화를?

재경: 소이정이 결혼한다는데? 그거 사실이야? 

준표:(눈 휘둥) 뭐? 이정이가 결혼? 너 대체 어디서 그런 헛소리를 들은 거야?

재경: 역시 어른들끼리 추진하는 정략 결혼인 모양이네... 분명히 잔디가 자기 친구가 소이정이랑 사귄다고  

       말했는데 말이지...

 

준표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지금 재경으로부터 이정을 도와줄 수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음을 파악했다.

이정으로부터 도움 요청을 받은 후 매일 정실장을 통해 언론 동향을 확인했지만 아직 잠잠한 상태였다.

 

준표: 한국에서는 아무런 얘기 없어. 미국에서는 지금 무슨 소문이 돌고 있는 거야?

재경: LKM라고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부동산 회사가 있는데 그 오너가 재미교포야.

      원래는 MBA 공부를 하러 온 유학생이었는데 졸업후 부동산 회사에 취직한 후 계속 승승장구 해서

      예전 도널드 트럼프에 버금가는 부동산 재벌이 됐어.

      10년전에 독립해서 LKM을 설립했고 3년전부터 불경기를 맞아 사업다각화를 모색중이야.

      딸이 파슨스 디자인 스쿨을 지난 달에 졸업했는데 문화 마케팅 전공이라 문화산업에 뛰어든다는 소문이

      파다해. 

준표: 아하! 그래서 우송과 손을 잡겠다는 거구만. 우송은 대한민국 대표 박물관이라 노하우가 풍부하고,

     게다가 지금 관장은 해외로도 진출하고 싶어하니까 말야.

재경: 우송과 LKM 모두 윈윈이란 거지. 어디까지나 양쪽 아들 딸이 순순히 결혼한다는 전제하에 말야.

준표: 땅장사로 돈은 충분히 벌어놨고, 이제는 명예를 얻으려고 하는구만.

재경: 한국에서는 아무 말이 없다는 건 그 딸이 귀국한 후에 결혼설을 터트리겠다는 심사인가본데.

준표:(단호하게) 정략 결혼이라니 어림없는 소리 말라고 해! 이정인 잔디밭 친구랑 결혼할 거야.

재경: 역시 그렇군. 하지만 소이정이 쉽게 빠져나가긴 힘들 거야.

      제3자가 보기엔 완벽한 결합이라서 말이지. 

준표: 몽키 넌 대체 누구편이야? 나한테 냉큼 전화할 정도면 이정이편인거 아냐?

재경:(달래듯) 진정해 쭌~ 이정이 여친이 잔디 친구라며. 그럼 나도 당연히 잔디 친구편이지.

      잔디한테서 얼마나 좋은 얘기 많이 들었는데. 듣자하니 소이정에게 아까운 천사라며? 

준표: 첨에는 너무 이정이 생각해줘서 지켜보다 답답해서 미치는 줄 알았지. 하지만 내면은 단단한 애야. 

      몽키, 이왕 전화준거 그 여자에 대한 정보 모두 넘겨줘. 그리고 언제 한국에 올 건지도 좀 확인해보고.

재경: 내가 도와주면 넌 뭘 줄건데?      

준표: 뭘 원해?

 

준표는 재경이 이정과 가을편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느긋했다.

게다가 재경의 요청은 놀이공원 전세내고 같이 놀기와 같이 주로 몸으로 때울 수 있는 게 많았기 때문에 필요하면 잔디나 F3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재경: 일단 키핑해둘게. 나한테 빚진 거 있다는 거 잊지 마 쭌.

준표: 알았어. Deal~

재경: OK. 30분내로 메일 보낼게. 

 

 

 

 

30분 후, 준표는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차가운 비웃음을 흘렸다.

'네까짓게 감히 누굴 넘봐?'라는 표정으로 이정의 정략결혼 대상자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고는 망설임없이 즉시 지후, 우빈, 이정에게 전화했다.

 

준표: 지금 당장 내 방으로 집합해. 소이정의 정략결혼 대상자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어. 

      이제 상대를 알아냈으니 대비책을 세워보자고.

지후, 이정, 우빈: 알았어.

 

평소같으면 데이트하자고 졸라댈 토요일 아침이었지만 잔디, 리라, 가을은 어젯밤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친 달동네 청소년 실내악단의 축하파티 준비에 바빠 모두 제 남자친구를 볼 수 없다고 미리 통보한 상태였다.

원래는 F4도 파티가 시작하면 깜짝 방문을 할 생각이었지만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 본의 아니게 여자친구들의 부탁을 들어주게 된 셈이었다.

 

 

전화를 한지 20분만에 이정, 우빈, 지후가 차례로 준표의 방으로 들어왔다.

모두 말끔한 차림이었지만 표정에는 호기심과 흥분감이 깃들어있었다.

준표는 여유롭게 미소짓더니 의자에서 일어났다.

 

준표: 자 그럼 아침식사 하고 계획을 세우자고. 뇌에 충분한 당분을 공급해줘야 좋은 생각이 나오지.

이정: 너 표정이 좀 수상한데?

지후: 재미있는 게임을 준비하는 표정이네.

우빈: 어쩐지 기대되는걸.

 

준표의 자신감이 모두 전염된 듯 F4는 흥미진진한 영화를 보러 가는 듯한 표정으로 식당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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