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책

랑야방2 풍기장림

지혜의 여신 2023. 12. 9. 14:04

드라마를 먼저 봤기 때문에 드라마 카테고리에 넣어야 하나 고민했으나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본 건 책이므로 결국 책 카테고리에 넣기로 했다.

 

랑야방이라는 희대의 정치 드라마(소설)이 나온 후 그 세계관에서 50년 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사실 드라마에서는 아버지인 소정생과 큰 아들 소평장을 완벽한 인물로 그려주지만, 내 마음에 쏙 들었던 건 바로 둘째 아들인 소평정이었다.

형이 워낙 완벽해서 가문(장림왕부)를 이을 의무를 200% 수행하기 때문에 소평정은 랑야각에서 자라 자유로운 강호인을 꿈꾸는데 내 7번 성격과 꼭 닮았는데다 머리도 좋고 무술도 잘한다. 배우도 카톡 이모티콘 라이언을 닮아 좋아하는 류호연이라 더더욱 좋기도 하고^^

 

 일찌감치 결혼해서 7년이 넘도록 부인과 금슬이 좋다 못해 흘러 넘치는 형과 달리 평정은 갓 태어난 직후 부모님이 정해준 정혼자를 기다려야 하는 처지다. 그래서인지 21살이 되도록 여자에게 관심도 없는 모태솔로인데 정작 정혼녀인 임해는 평정을 알고 있어서 초반부 둘 사이의 삐걱거림과 의도치 않은 꽁냥꽁냥이 내 맘에 들었다^^

똑똑하지만 여자 맘은 전혀 모르는 눈치꽝 비글 댕댕이가 끊임없이 다가가서 두드리고 지혜롭지만 냉정한 철벽녀가 점점 마음을 열게 되는 과정은 언제 봐도 재밌다 ㅎㅎㅎ

 

 기본이 정치 드라마 겸 소평정의 성장 드라마이기 때문에 금슬 좋은 형님 부부도 대놓고 러브신이 안나오고(대신 핑크빛 분위기는 정말 최고다) 소평정 역시 임해랑 키스도 안 하지만 천천히 서로에게 마음이 흘러가서 가득 차게 되고 운명의 장난으로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모습이 참 낭만적이다.

 아쉽지만 책은 드라마보다 평정과 임해가 함께 하는 장면이 훨씬 적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마음인지는 드라마에서 표정과 눈빛 연기, 대사로 비춰준 것을 직접 설명한다는 점에서 마음에 든다.

 

 유일하게 아쉬운 것은 그 똑똑한 평정이가 끝까지 남이 알려주기 전까지는 임해가 자기 정혼녀라는 걸 몰랐다는 점인데... 난 적어도 책에서는 미리 눈치챌 줄 알았건만 에휴~

 

 그래도 평정이는 100% 임해를 존중해서 둘이 함께 모든 약초를 맛보고 책으로 정리하겠다는 임해의 꿈과 강호인으로 자유롭게 살겠다는 자신의 꿈을 끝내 실현시키는 것으로 소설과 드라마를 끝낸다.

 

[소설 속 묘사]

 

 -솜털처럼 펑펑 쏟아지는 폭설이 시야를 가렸지만, 돌아오던 소평정은 희뿌연 눈발을 뚫고 멀리 사각지붕을 얹은 조그마한 정자 아래에 선 늘씬한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입가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떠올랐다.

 북풍이 눈송이를 휘말아 정자의 울타리 속으로 쏟아져 들어가 달빛같이 하얀 외투를 걸친 임해의 치맛자락을 펄력였다. 눈발 때문에 얼굴은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표현할 길 없는 아름다음과 사랑스러움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1권)

==> 형수를 위해 약초를 캐서 돌아오는 평정이 멀리 정자에서 임해의 모습만 보고도 바로 미소를 짓고 아름답다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걸 보면 아무래도 대동에서부터 친해지고 형수의 불임을 치료하는 똑똑한 임해를 보면서 사랑에 빠진 모양이다.

 

 -방에서 의서를 읽으려던 임해는 맑은 노랫소리에 이끌려 밖으로 나와 회랑을 받치는 둥그런 기둥에 기대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점점이 번쩍이는 검광 사이로 움직이는 훤칠한 그림자가 몹시도 아름다워 가만히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푹 빠져들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두중과 운 아주머니는 물론이고 점원들까지 회랑에 모여들어 구경하고 있었다. 임해는 까닭 없이 얼굴이 빨개져 황급히 방으로 들어가 문과 창문을 꼭 닫았다. (1권)

==> 형이 입양이 되었기 때문에 집사가 형 대신 자신이 장림왕부를 잇길 바래서 형수의 불임을 방조했다는 사실에 충격받은 평정이 임해가 있는 제풍당으로 도피해서 술을 마신 후 정원에서 검무를 추는데 임해는 그런 평정의 모습에 매료된다. 아마 이게 임해의 시점에서는 사랑의 시작일듯? ㅋ

그 뒤로 임해는 평정이 당신이 날 좋아하네 안 좋아하네 이런 식의 농담을 하면 얼굴이 빨개지게 된다.

 

 -그는 벌떡 일어나 정원 밖으로 달려나가다가 몇 걸음 못 가서 다시 돌아와 들고 있던 복숭아꽃을 재빨리 머리에 꽂아주며 두 눈을 별처럼 반짝였다.

 "고맙소, 임해."

 한참 만에야 정신이 든 임해는 화난 눈길로 그의 뒷모습을 노려 보며 귀밑머리에 꽂힌 꽃으로 손을 가져갔지만 꽃을 떼어내려던 손가락은 머뭇머뭇하며 끝내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2권)

==> 평정은 자기 맘은 잘 몰라도 무의식적으로 임해에게 애정을 표시하고 임해도 원치 않아도 평정에게 점점 맘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본래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편이 아닌 몽천설은 허둥지둥 제풍당으로 달려가 "평정이 피투성이가 되어 거의 죽기 직전"이라고 알렸고, 그 과장된 설명을 사실이라고 믿은 임해는 놀란 나머지 자세히 묻지도 않고 눈시울이 새빨개져서 달려왔지만 직접 보니 그 정도로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다. 먼저 도착한 원 태의가 처치를 잘해놓아 막 정신이 든 소평정은 제법 활기찬 목소리로 그녀를 위로했다.

 "난 괜찮으니 울지 마시오."

 평소 차분하고 자제심이 강한 임해였기에 지금 그녀가 얼마나 초조해하고 걱정하는지 눈치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소평정의 이 한마디에 여러 시선이 자신에게 날아들자 그녀는 화가 나고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다. 손에 은침을 들고 있었다면 그대로 소평정을 찔러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2권)

==> 아마 이때부터 임해가 완전히 평정에게 마음을 줘 버린게 아닐까?

 

 "당신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상상한 적이 있어요. 당신은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좋아요. 평정, 나중에 어떻게 되든 난 당신을 알게 되어 참 기뻐요."(2권)

==> 임해가 역병에 걸린 후 평정이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던 밤, 병으로 약해진 상태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속마음을 말한다. 평정은 당연히 둘이 정혼한 사이임을 몰라서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를 못하는데 난 나중에 이 말을 떠올리며 임해가 정혼자임을 깨달을 줄 알았다 --; 그러나 형님만 노당주의 말뜻을 파악하셨다... 떱...

 

 -서로의 마음은 분명했다. 지난 약속 때문도 아니고 다른 사람 때문도 아니었다. 함께 지내는 동안 서로가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생겨난 감정이요,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그 무엇보다 순수한 애정이었다.

 그러나 아름답던 그 모든 것은 이제 곧 추억이 될 터였다. 오늘이 지나고, 소평정이 깨더나면 그는 영원히 그녀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2권)

==> 사랑하는 평정을 살리기 위해, 아버지와 동생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한 평장의 목숨을 앗아가는 상골독 치료를 앞두고 임해는 이별을 직감한다. 그 희생을 원치 않고 자신을 원망할 평정의 마음을 아니까. 하지만 내가 임해라도 결국 그 상황에서는 평정을 살리는 치료법을 실시했을 것이다. 

 

 -그날 밤 이후로 소평정은 목에 건 은쇄를 슬그머니 끌러 광택헌의 작은 궤짝에 잘 숨겼다. 그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마음속으로만 이름뿐인 약혼녀에게 사과를 전했다. 아버지 대에서 어떤 약속을 하고 무슨 기대를 했건 반드시 짊어져야 할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요, 끊을 수 없는 인연도 아니었다. 이것은 바로 순수한 마음의 흔들림이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감정이었고, 그녀의 손을 꽉 잡고 영원히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 후 닥쳐온 운명의 거친 파도가 마음을 표현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진상을 안 뒤 가장 고통스럽던 나날 속에서도 애를 쓰고 발버둥 쳐보았지만 그는 끝내 용기를 내지 못했다. (3권)

==> 임해를 향한 사랑을 직접적으로 묘사해줘서 참 고마웠다. 소설의 유일한 좋은 점은 바로 이런 맘을 바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평정이는 힘들면 직면하지 못하고 도망가버린다는 표현을 보아 7번 유형인듯....

 

 -임해는 본래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고자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 이것이 당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성심성의껏 하면 되는 거예요."

 마음이 따스해지는 것을 느낀 소평정은 저도 모르게 책장을 정리하던 가녀린 손을 잡고,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빼내려 하는데도 아랑곳없이 손바닥에 힘을 주어 그러쥐고 한참 동안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4권)

==>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감정을 임해에게 쏟아낸 후 2년 후 재회한 평정은 이제 자연스럽게 애정을 표시한다^^ 임해도 이해심이 바다같이 넒은 사람이라 가능한 듯...

 

 -서로를 향한 정은 물처럼 맑고 투명해 많은 말이 필요치 않았다. 속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처럼 평온하고 순수한 세월이 조금 더 길게, 조금 더 오래 지속되는 것이었다. 금릉성을 멀리하고 조정도 멀리하고, 홍진의 어지러움도 잊은 채 이렇게 서로 의지하며 이리저리 바뀌는 산풍경과 하늘에 흘러가는 은하수를 구경하며 살고 싶었다.

......

 세간의 정이란 불꽃과 같아서 활활 불태우고 싶을 만큼 뜨겁다고들 했다. 하지만 그녀와 소평정은 그랬던 때가 거의 없었다.

 그들은 구불구불 흐르는 두 줄기 강물에 더 가까웠다. 험한 여울에 부딪히든 높은 골짜기에 가로막히든 그 무엇도 두 물줄기가 서로를 향해 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고, 마침내 하나로 합쳐진 뒤에는 그 무엇도 두 물줄기를 완벽하게 분리해놓을 수 없었다. (4권)

==> 평정이 드디어 청혼을 한 뒤의 두 사람의 마음을 묘사하는데 정말 이 부분 때문에 책을 읽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 같았다. 평장과 천설은 불꽃처럼 뜨거웠지만 평정과 임해는 자연스러운 물줄기같은 사랑이라는 묘사가 좋았다^^

 

 -가슴을 가득 채우는 부드러운 정과 함께 자신이 얻은 행운이 너무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 넓은 세상에서 서로를 만난 것도 행운.

 나라를 저버리지 않고 서로를 저버리지 않은 것도 행운.

 정만 깊은 것이 아니라 인연도 깊어 어려움을 겪고도 결국 여생을 함께하게 된 것은 더욱 더 행운이었다. (4권)

  ==> 반란을 진압하고 황제를 구한 다음, 평정은 장림왕부를 다시 세울 수 있었지만 결국 임해와 함께하는 자유로운 삶을 선택하고, 임해도 다른 나라로 떠나지 않고 경성 밖에서 평정을 기다려서 다시 만난다. 비록 소설도 뺨에 입을 맞추는 걸로 끝나지만 충분히 낭만적인 결말이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