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대-
이정은 파리 전시회를 마치고 공항에 마중나온 기사에게 지시해 바로 신화대로 왔다.
가을은 이정이 도착했다고 전화하자 방방 뜨는 목소리로 도서관에 있다고 말해줬다.
차가 신화대 정문에 도착하자 이정은 기사에게 대기할 것을 지시하고는 재빨리 도서관으로 뛰어갔다.
손에는 가을을 위한 선물이 들려있었다.
도서관 건물이 보이자 이정은 곧 가을의 웃는 얼굴이 보이겠다 싶어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곧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있는 가을이 보였다.
보름동안 너무나도 그리워했던 가을의 모습이 보이자 이정은 환하게 웃으며 가을을 부르려고 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껑충하니 키가 크고 깡마른 남학생이 가을에게 수줍게 다가갔다.
가을은 방긋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무언가를 남학생에게 건네주었다.
그 남학생은 활짝 웃으며 뭐라고 웅얼거리더니 가을을 덥썩 끌어안았다.
하지만 가을은 화를 내거나 당황하기는 커녕 웃으면서 남학생의 등을 살짝 두드려주었다.
툭-하고 이성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정: 지금 누굴 함부로 끌어안는 거야!
이정은 분노에 차서 가을을 껴안았던 키 큰 남학생을 떼어놓고는 주먹을 날렸다.
남학생은 턱에 주먹을 맞고 비틀거리더니 그만 그자리에서 주저 앉아버렸다.
가을의 얼굴이 새하얘져 재빨리 남학생 앞에 꿇어앉고는 상태를 살폈다.
가을: 정우야!! 괜찮아?
가을이 자신은 쳐다보지도 않고 남학생을 챙기자 이정은 더욱 더 화가 났다.
거칠게 가을의 팔을 확 끌어당겨 남학생에게서 떼어놓고 화를 버럭 냈다.
이정: 추가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가을은 이정의 큰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듯, 자신의 팔을 빼내고는 성난 표정으로 이정을 노려봤다.
가을:(버럭) 오빠야말로 지금 뭐하는 짓이에요?
이정: 뭐? 너 지금 이자식 편들어주는 거야!
가을: 어떻게 아무말도 없이 불쑥 나타나서 사람을 칠 수가 있어요?
오빠 그렇게 예의범절 없는 사람이었어요?
이정: 뭐라고?
이정은 어이가 없어 멍하니 자신에게 성을 내는 가을을 바라봤다.
보름간 자신이 유럽으로 전시회를 하고 온 사이에 학교에서 멀대같은 놈과 희희낙락하더니 도리어 자신에게 화를 내다니!
가을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정을 째려봤다.
남학생은 서서히 몸을 추스리더니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가을과 이정사이에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F4 아지트-
우빈: 푸하하하 그래서 가을이가 화나서 집에 가버렸단 말이지.
우빈이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소파에서 배를 잡고 웃어댔다.
지후도 그런 우빈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오직 준표만 얼굴을 찌뿌렸다.
준표: 야 어떻게 사람 얼굴 다 기억하냐?
나라도 잔디밭이 모르는 놈이랑 웃으며 얘기하다 껴안으면 돌아버리지.
지후: 가을이에 대한 건 뭐든 다 안다고 큰소리 치던 놈이 가을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동생의 남친도
못알아본다면 실망이지.
게다가 이미 한번 만났었다며. 맨날 겨울이를 처제라고 챙겨주더니 남친 얼굴 까먹으면 쓰나.
우빈: 하긴 가을이는 이정이보다 동생을 더 챙기니깐. 그런 동생 남친 얼굴에 무려 주먹을 날렸으니 크크크.
착한 아가씨가 한 번 화내면 얼마나 무서운데 어쩌냐 my bro~
지후와 우빈의 말에 이정은 뜨끔해졌다.
가을은 항상 동생인 겨울에게 미안해했다.
자신이 심장병을 앓는 동안 부모의 관심을 혼자 독차지해 겨울을 본의아니게 소외시켰다고 말이다.
심지어 이정과 데이트를 하는 중에도 겨울에게 온 전화는 꼬박꼬박 다 받는 가을에게 잔디처럼 통화도 못하게 할 수 없어 속앓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정우가 가을에게 괜찮다고 말을 했건만 가을은 절대 괜찮지 않다고 화를 펄펄 내면서 정우를 데리고 도서관으로 들어가버렸다.
자신과 가을 사이에서 어쩔줄 몰라하다 어리버리하게 가을을 따라가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이정은 정우가 겨울의 남자친구라는 사실을 기억해냈지만 이미 늦었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고,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었다.
결국 이정은 한 시간이 넘도록 가을을 기다리다 돌아가야 했다.
답답한 마음에 아지트에 와서 하소연을 했건만 준표만 제 편을 들어줬을 뿐, 지후와 우빈은 이정을 약올리기 바빴다.
지후는 평소처럼 무심한 표정으로 은근히 제속을 긁어댔다.
지후: 가을이는 너밖에 모르는 거 알면서 왜 주먹부터 날린 거야?
설마 너 없는 보름간 한눈팔거라고 생각했던 거냐?
우빈: 그러게나 말이다. 추가을은 소이정 여친이라는 거 온 신화대 학생이 다 알도록 만들어놓구선.
이정:(버럭) 가을이가 웃으면서 안겼단 말야! 나도 포옹 이상은 못하는데 그 자식이 감히!!!
이정은 울컥해서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바로 후회했다.
준표와 우빈은 물론이고 지후까지 놀란 얼굴로 이정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 표정이라는 게 말로 표현하기 힘든 놀라움과 불신이 담겨있었다.
우빈: 가만있자, 이정 너 지금 한 말을 정리해보면...
이정: 정리는 무슨 정리! 잊어버려!
지후: 오빠로서 듣기 반가운 말이긴 하다만... 진짜야?
준표: 5초킬인 니 녀석이? 야 진짜 믿기 어려운 얘기다!
이정은 제 무덤을 스스로 팠다는 걸 알고서 고개를 푹 숙였다.
한국땅에 도착한 뒤로 지금까지 맘대로 돌아가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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