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콤 살벌

[우빈 단편] 달콤 살벌한 그녀_파티장에서 생긴 일

지혜의 여신 2009. 6. 30. 21:44

-신화호텔-


연아는 준표의 초대로 신화호텔 창립기념 파티에 참석하러 호텔안으로 들어갔다.

평소 옷차림과는 거리가 한참 먼 연두색 쉬폰 원피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있자니 너무나도 어색하고 불편했다.

하지만 옷차림보다 더 어색한 건 평생 갈일 없을 거라 믿었던 부자들의 파티에 초대받아 참석한다는 사실이었다.

일이 많아 못간다고 초대를 거절했지만 준표는 우격다짐으로 초대장을 보냈고, 우빈은 드레스를 보낸다, 미용실을 예약한다고 소란을 피우는 통에 연아는 자신이 옷과 머리, 화장을 알아서 하겠다고 겨우 합의를 봤다.

정시퇴근할 일이 거의 없는 법의관인만큼 우빈에게도 같이 갈 수 없으니 먼저 호텔로 들어가라고 했다가 차를 보내네 마네 하는 문제로 한바탕 언쟁을 벌인 끝에 연아는 본인의 뜻대로 대중교통편으로 파티장에 가기로 했다.

휘양찬란하게 꾸민 파티장으로 들어가자마자 바로 우빈이 기다렸다는 듯이 연아에게 다가왔다.


우빈: 이제 왔어, lady?

연아: 어쩜 딱 맞춰서 입구로 나오는 거야? 파티가 지루했어?

우빈: 어. 우리 lady가 없으니까 재미 하나도 없는 거 있지.


연아는 어리광부리는 우빈이 귀여워서 피식 웃고는 우빈이 내미는 팔을 잡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보는 상류층의 파티장에 들어오니 확실히 볼거리가 많아서 연아는 계속 두리번거렸다.

물론 자신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시선도 감지했지만 그 정도는 가뿐히 무시했다.

우빈은 연아를 오늘 파티의 주인공인 준표와 잔디에게 데려다주었다.


준표:(약간 짜증) 지금이 몇신데 이제 와?

잔디:(준표 옆구리를 팔꿈치로 치며) 선배님 피곤하실텐데 이렇게 와주셔서 고마워요.

연아: 끝나자마자 바로 왔거든. 암튼 멋진 파티 초대해줘서 고마워.

준표:(옆구리 쓰다듬으며) 아직 음식 남아있으니까 저녁 식사해.

연아:(두눈 반짝거린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알았어.


연아는 주위를 둘러보다 음식이 놓여진 테이블을 보고는 망설이지 않고 걸어가서는 샌드위치며 김밥, 초밥을 잔뜩 접시에 담았다.

우빈은 와인잔을 들고 연아의 곁에 붙어있었다.


연아: 우빈씨 식사 다 했을텐데 여기 있기 좀 그렇지 않아?

우빈: Lady 알렉스 혼자 식사하게 놔둘순 없으니깐.


연아는 못말리겠다는 듯이 피식 웃고는 접시를 들고 소파를 찾아 이동했다.

우빈은 연아가 목이 메일까봐 녹차가 담긴 잔을 빈손에 들고 연아의 뒤를 쫒아갔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하며 술과 음료를 마시는 두 사람에게 이정과 가을이 다가왔다.


이정: 연아씨 오셨네요.

가을: 오랜만이에요 연아 언니.

우빈: 어디 숨어있다 이제 나타나는 거야?

연아: 만나서 반가워, 두 사람. 발그레레한 모습 아주 보기 좋은데 큭.


가을은 뼈있는 연아의 말에 다시 얼굴이 확 붉어졌지만 이정은 태연하게 가을의 손을 잡았다.


이정:(싱글거리며) 식사 다하면 우빈이가 우리가 갔던 곳 구경 잘 시켜줄 거에요.

우빈: 싫다. 우리가 왜 너희의 흔적을 밟아야하는데?

이정: 왜냐하면 말이지...

가을:(재빨리 끼어들어) 오빠 괜한 소리 말아요.

연아:(음식으로 찬 입을 오물거리면서) 나 피곤해~ 그냥 여기에 앉아서 푹 쉬다가 갈 거야.

이정: 훗, 그럼 안되죠. 연아씨 이렇게 아름답게 치장하고 왔는데 우빈이가 연인이라고 얼마나 자랑하고 싶겠어요.

우빈:(여유있게) 소이정 my bro. 넌 아직 이 형님 못따라와.

이정: 무슨 소리야?

우빈: 우리 lady 피곤한 몸 이끌고 날 위해 파티장에 와주셨는데 꼭 내가 눈치없이 이리저리 끌고 다녀야겠냐?

가을: 역시 우빈 오빠는 사려깊어요.

연아: 그래서 내가 우빈씨한테 반한 거지.


이정은 괜한 말을 했다는 생각에 후회했지만 애써서 표정관리를 했다.

그런 이정을 보면서 우빈과 연아는 알겠다는 미소를 교환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 우빈과 이정, 가을이 소파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동안 연아는 입이 심심하지 않게 과자를 챙기러 음식 테이블로 갔다.

접시에 손을 뻗치려던 찰나 여자들이 자신을 에워쌌다.


여성1: 우빈 오빠 파트너로 오신 분 맞죠?

연아: 네 그런데요?

여성2: 처음 뵙는 분이라서요. 파티에는 잘 나오지 않으시나봐요?


연아는 자신을 둘러싼 여성들의 화려한 옷차림과 화장을 보고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참 한심하다 싶어 속으로 혀를 끌끌 찼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고 여유만만한 웃음을 지었다.


연아: 일이 워낙 바빠서 이런 곳에 올 엄두가 나지 않거든요. 지금도 많이 피곤하긴 한데 워낙 우빈씨가 같이 참석하자고 졸라서 호호호.

여성3: 어떤 일을 하시는데요?

연아: 법의관이랍니다.

여성4: 법의관이면 뭐를 하는데요?

연아:(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시체 부검을 하고 있어요.

 

예상대로 자신을 둘러싼 여성들이 경악과 공포로 차오르더니 핏기가 싹 가셨다.

연아는 조소를 머금으며 접시를 집어 과자를 종류별로 골랐다.

멀리서 우빈 일행이 여자들의 표정을 보고 키득거렸다.

잠시 멍하니 있던 여성들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연아를 둘러쌌다.


여성3: 법의관들은 보통 남자들이 하지 않아요?

연아: 제가 홍일점이길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선배님이 계셔서 말이죠.

여성2: 그럼 그 국과수에 여성 법의관이 두 사람이란 말이에요?

연아: 네 그렇죠.

여성4:(연약한 척) 근데 무섭지 않으세요? 시체를 만진다는 게?

여성1:(적극 동조) 그러게요... 저라면 기절할 거 같아요.


연아는 자신을 흡혈귀처럼 보는 여성들에게 최대한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여성들에겐 그 미소마저도 무섭게 보였다.


연아: 적어도 시체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산사람보단 낫지요.

여성들: 네?

연아: 아이러니한 건 말이죠... 죽은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부검을 하면 고스란히 진실을 전해듣게 되는데 살아있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거에요.

     예를 들면 코를 높였다거나, 가슴을 확장시켰다던가, 주름을 폈다던가, 턱을 깎았다거나 하는 식으로 수술한거 뻔히 티나는데도 살아있을 때는 자연산이라고 우기지만 부검을 하면 칼을 댔다는 걸 알려주거든요.

     덕분에 어느 시대에 어떤 방식의 성형 수술이 유행했는지까지 저절로 알게 됐다니까요.


연아는 일부러 해당되는 성형수술을 한 사람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사례를 설명해 앞에 있는 여성들을 긴장시켰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까지 덩달아 예상 밖의 살벌한 이야기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성형수술 이야기에 안도하던 남자들까지 섬뜩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곧이어 나왔다.


연아: 급사하는 사람은 거의 다 남자들이에요.

       별별 경우를 다 봤지만 제일 황당한 건 복상사를 당했는데 가족들은 집에서 과로사라고 우긴다는 거죠.

     (사악하게 웃으며) 뭐 과로라는게 아주 틀린 말은 아니긴 하겠지만 말이에요.


우빈은 잘난척하는 상류층 여자들에게 둘러쌓여도 태연하게 자신의 페이스대로 이야기를 하는 연아가 보기 좋았다.

게다가 콩깍지가 단단히 씌였는지 연아의 이야기에 반경 10m 정도가 갑자기 시베리아로 변하는 걸 보면서도 마냥 흐뭇하기만 했다.


이정은 그런 우빈을 흘깃 보고는 못말린다는 듯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가을은 늘 잘난척하는 사람들의 콧대를 확실히 눌러준 연아를 보면서 속으로 통쾌하게 생각했다.

잔디와 준표는 연아와도, 우빈 일행과도 약간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연아 주변과 우빈의 표정을 보고는 지금 연아가 어떻게 사람들을 제압했는지 깨달았다.


연아는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주변에 얼어붙은 사람들을 못본체 지나치고는 과자를 가득 담은 접시를 들고 우빈과 이정, 가을이 있는 소파로 돌아왔다.

잔디와 준표도 일행이 있는 소파로 왔다.


준표:(툴툴대며) 무슨 얘길 했길래 저 사람들이 갑자기 시체처럼 굳은 거야? 또 해부 얘기 했어?

연아:(과자 집어먹으며) 아니, 죽은 사람은 각종 성형 수술이라던가 복상사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데 살아있는 사람들이 거짓말한다고 얘기했지.

       다들 찔리는 게 있는지 암말도 안하네.

우빈:(통쾌하게 웃으며) 하하하 잘했어. 저런 인간들은 아무리 잘난척해봤자 죽으면 다 똑같아진다는 거 알아야 해.

잔디:(과자 먹으면서) 하긴, 알고보면 지들이 더 추잡하게 굴면서 아닌 척 고상떠는 꼴하고는.

가을:(신난 목소리로) 지금도 저사람들 굳어있는데요. 완전히 석상 수준이에요, 푸훗.

 

여자들과 우빈이 신나게 연아가 가져온 과자를 먹으면서 고소해하는 동안 이정과 준표는 못말린다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우빈은 갑자기 연아의 얼굴을 보고는 손을 뻗어 입가에 붙은 과자 부스러기를 떼어내 입에 넣었다.


우빈: Lady 알렉스, 과자 좋아하는 거 알지만 부스러기는 묻히지 말아줘. 쌍둥이 동생들 같잖아.

연아: 훗, 갑자기 우빈씨가 오빠같이 느껴지는데. (생긋 웃는다)

우빈:(혼잣말) 하아~ 그렇게 웃으면 나보고 어쩌라고...


우빈은 결심을 한 듯 연아의 손에 들려있던 과자접시를 잔디에게 쥐어주고는 연아의 손을 잡아끌었다.

연아가 어리둥절해하며 우빈에게 끌려가자 이정은 우빈과 연아가 가는 방향을 확인하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정:(혼잣말) 송우빈, 너도 어쩔 수 없구나.

가을: 오빠, 지금 뭐라고 한 거에요?

이정:(키득거리면서) 착한 아가씨는 몰라도 돼.


가을은 영문을 몰라 잔디를 봤지만 잔디도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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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빈은 연아의 손을 잡은 채로 테라스로 나와서야 발걸음을 멈췄다.

연아는 그만 우빈의 등에 이마를 부딪히고 말았다.


연아: 우빈씨, 갑자기 또 왜 멈추는 거야?


우빈은 몸을 돌려 연아를 바라보고는 두 손을 들어 연아의 얼굴을 감쌌다.

열기가 가득한 우빈의 눈을 보며 연아는 몸이 굳어버렸다.


연아:(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우빈씨...

우빈:(억지로 소리내어) 그렇게 사랑스럽고 천진하게 웃으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잖아.


우빈은 말을 마치자마자 연아의 입술을 덥쳤다.

뜨거운 우빈의 입술을 받은 연아는 밀려오는 열기에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진한 입맞춤을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을 달빛이 은은하게 감싸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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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악으로 Moonlight shadow를 찾아서 들어주세요 ^^

가사는 살벌해도 우빈과 연아의 연애질과 딱 어울리는 멜로디와 제목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