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콤 살벌

[우빈 단편] 달콤 살벌한 그녀 숨은 실력을 발휘하다

지혜의 여신 2009. 6. 30. 21:46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연아는 부검실에서 젊은 여성의 시체를 부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연아:(혼잣말로) 자기는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보아하니 얌전하고 착실한 대학생 같은데.

쯧쯧 정말 말세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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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동안 정성스럽게 부검을 하고 난 후, 연아는 경찰을 부검실로 들어오게 해서 이 여성이 어떻게 죽었는지 하나하나 설명했다.

 

연아: 완전히 술에 취해서 목이 졸려도 반항을 전혀 못했던 거 같아요.

사반과 사후강직 상태를 봐서는 어젯밤 10시에서 12시 사이에 살해당한 거 같습니다.

장형사:(못마땅한 표정) 이번에도 동일범의 소행입니까?

연아:(고개 저으며) 사지를 묶고 복부에 마구 칼자국을 낸 건 똑같은데 이번엔 사후에 취한 행동이란 점에서 모방범죄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봤던 그 연쇄살인범의 시신들의 자상은 분명히 죽기 전에 났던 거에요.

장형사: 어쩌면 최근의 연쇄살인으로 위장하려고 시도한 걸 수도 있겠네요.

연아: 그럴 수도 있고요. 어쨌든 이번 피해자는 적어도 고통을 거의 느끼지 않았을 거에요.

장형사: 연쇄살인 피해자가 늘어나지 않은 건 기쁜 일이지만, 미친 놈이 하나 더 늘어난 건 골치아프네요.

연아:(한숨쉬며) 그러게요.

장형사: 시신에서 뭐 나온 거 없습니까?

연아:(차트를 보며) 일단 성관계는 없었구요.

위 내용물 분석 결과를 보면 죽기 전에 야식으로 떡볶이와 튀김을 먹었어요.

하지만 이건 단서가 되지 못하겠죠?

장형사: 최근의 연쇄살인이 아니란 걸 밝혀주신 것만으로도 고맙지요.

처음 연락을 받았을땐 그 놈이 이젠 강북으로 영역을 옮겼나 했습니다.

연아: 네...

장형사: 그럼 전 최박사님한테 다른 증거 나온거 없는지 확인하러 가겠습니다.

연아: 예. 힘내세요, 장형사님. (약하게 미소짓는다)

 

장형사는 연아의 미소에 잠시 주춤했지만 고개를 까딱한 후 서둘러 부검실을 나갔다.

하지만 연아는 다른 걱정으로 장형사의 행동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클럽-

 

우빈:(놀란 표정) 그럼 이번엔 모방범죄란 말야?

 

연아는 퇴근 후 국과수로 마중나온 우빈과 함께 늦은 저녁을 먹은 다음, 술을 한 잔 하러 우빈의 클럽으로 들어왔다.

최근 젊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연쇄살인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우빈이 매일 퇴근길에 마중을 나오고 있었다.

오늘은 그나마 모처럼 일찍 퇴근을 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나름 데이트를 하려고 일부러 룸을 잡았다.

그러나 화제는 결국 연아가 부검한 젊은 여성 시신이 되고 말았다.

 

연아:(고개 끄덕) 응.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임기응변으로 따라한 건지, 아님 첨부터 모방범죄를 저지르려고 작심한 건진 모르겠지만.

우빈: 근데 그 피해자 주소가 연아씨 집이랑 가깝잖아.

모방범이든 연쇄살인범이든 간에 지금 연아씨 위험한 거 아냐?

연아: 이보세요, 송우빈씨. 그 연쇄 살인범은 20대 초반 여성만 노리거든요?

우빈:(정색) Lady 알렉스, 본인이 얼마나 어려보이는지 아는 거야, 모르는 거야?

연아:(기가 차서) 사람들은 내 나이 제대로 봐. 잘봐줘야 20대 후반이라고.

우빈: 그래도 연아씨 캐주얼 입으면 대학생같단 말야.

 

연아는 지금 콩깍지가 씌인 우빈에게 감격해야 할지 황당해 해야할지 갈등이 됐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게 서로에게 좋겠다 싶어서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연아: 우빈씨가 나 어리게 봐주는건 고마운데 말야... 정말 걱정 안해도 돼.

우빈: 어떻게 걱정을 안 해.

연아: 나 예쁘다고 하는 사람 우빈씨밖에 없고, 평소엔 절대 캐주얼입고 출퇴근 안하니까 염려 끊어, 응?

우빈: 정말이지 나 출장가기 싫다. 우리 lady 걱정돼서 아무 일도 못할 거 같아.

연아:(눈 동그래져) 출장? 어디로? 언제?

우빈: 다음주에 도쿄로. Lady 알렉스, 그냥 휴가내고 나랑 같이 3일간 도쿄가지 않을래?

연아:(뜨악) 지금 휴가를 내라고? 이 비상시국에? 우빈씨 제정신이야?

우빈: 국과수에 부검의가 연아씨만 있는 거 아니잖아.

연아:(고개 저으며) 연쇄살인범은 둘째치고 항상 국과수에 일손 부족한 거 알면서.

우빈: 워낙 걱정되니까 그러지.

 

연아는 진지한 우빈의 말투에 진심이다 싶어 감격은 했지만 한편으로는 역시 철없는 부잣집 도련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화제를 바꾸지 않으면 싸움으로 발전하겠다 싶었다.

 

연아: 후우~ 마음만 받을게. 우빈씨 그렇게 내가 걱정되면 도쿄간 김에 휴족시간 좀 사다줘.

우빈:(어리둥절) 휴족.. 뭐? 그게 뭔데?

연아:(방긋 웃으며) 발에 붙이는 피로회복제야. 우빈씨도 알다시피 내가 거의 서서 일을 하잖아.

우빈:(갸웃) 그게 그렇게 효과있어?

연아: 우빈씨도 한번 써보면 그 매력에 퐁당 빠질걸? 큭.

 

우빈은 연아의 엉뚱한 부탁에 어리둥절했지만 그래도 차라리 밝은 얘기로 넘어간게 다행이다 싶었다.

연아가 자신과 교제를 시작한 후로 무언가를 사달라고 부탁한 것 자체가 처음이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바로 기분이 좋아지는 우빈이었다.

 

그날 밤, 연아를 집 앞까지 바래다 줄때까지 두 사람은 우빈이 연아를 위해 도쿄에서 쇼핑해야할 품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느라 연쇄살인 이야기는 잊혀졌다.

 

 

-수암 음악당-

 

F4는 유력 정계 인사 딸의 피아노 독주회에 참석하기 위해 모였다.

 

연주회가 평일에 열리는데다 잔디는 실습으로, 가을은 유치원 소풍준비로, 연아는 업무가 너무 많아 시간이 없는 관계로 참석하지 못했고, 지후의 약혼녀인 유림은 공연을 위해 일본에 있는 상태였다.

다행히도 피아니스트는 아버지의 후광이 아닌 수암 음악당의 공연 기준을 모두 충족시키는 실력파라 연주는 들어줄만 했다.

 

공연이 끝나고 음악당 로비에서 F4는 오랜만에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준표:(툴툴) 내가 장담하는데 오늘 억지로 잔디밭 데려왔으면 음악 듣다가 꿈나라로 갔을 거다.

어찌 된 게 잠올만한 곡만 골라서 연주하냐. (하품한다)

지후: 그래도 그만하면 연주는 잘하더라. 애버리 피셔 그랜트에 노미네이션될만 하던데.

이정: 가을양이 들었으면 좋아했을텐데 아쉽네.

우빈: 우리 lady는 좀 더 발랄한 걸 좋아하니깐 이거 놓쳤다고 아쉬워하진 않을 거 같아.

지후: 우빈아 너 내일 도쿄로 출발하지? 부탁 하나만 하자.

 

F3가 지후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다.

지후는 어지간하면 친구들에게 부탁이라는 걸 거의 하지 않았다.

 

우빈: 뭔데?

지후: 유림이 만나면 그 연쇄살인범 잡힐때까지 그냥 도쿄에 있으라고 해.

 

지후의 말이 신호탄이 된 듯 모두 자신들의 여자친구를 걱정하는 말이 쏟아져나왔다.

 

준표: 정말 걱정이야. 가장 최근 희생자 집이 알고보니 잔디밭네랑 가깝더라니깐.

그래서 우리집에서 머물라고 했더니 자긴 학교에 살다시피 하니깐 염려말라고 귓등으로도 안듣더라.

이정: 그러게 말야. 나도 가을양 걱정돼서 출퇴근할 때 차를 보내준다고 하니깐 어찌나 완강하게 거부하는지...

우빈: 연아씨 얘기 들어보니깐 이젠 모방범까지 나왔더라.

근데 본인은 모방범죄 피해자 부검한 얘기 아주 태연하게 하는 거 있지.

진짜 우리 lady 걱정돼서 출장도 가기 싫어.

 

모방범죄라는 말에 준표와 이정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지후 역시 얼굴이 딱딱해졌다.

 

준표: 모방범죄? 그럼 다른 미친 놈이 잔디밭이나 걔 친구 해칠 수도 있단 소리잖아.

이정: 역시 사람을 붙여줘야겠어. 불안해서 안되겠어.

준표: 아무래도 잔디밭 집으로 데려와야겠다.

지후: 피식, 약혼녀가 해외에 있는 내 처지가 가장 나은 거 같네.

우빈: 그러게나 말이다. (한숨쉬며) 나도 연아씨랑 같이 도쿄가면 좋겠는데...

이정: 넌 사람 붙이면 되잖아. 일심에 그렇게나 사람이 없어?

우빈: 그렇잖아도 경호원 붙여주겠다고 얘기하니깐 피해자는 모두 20대 초반 여성이니깐 자긴 안전하다고 한사코 거절하는 거야.

준표: 그런다고 순순히 물러나? 안보이게 조치하면 그만이잖아.

우빈: 역시 그러는 게 낫겠지?

지후: 할아버지 말씀대로 예방이 최선이야.

우빈: 그래... (고개 끄덕)

 

젊은 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쇄살인사건으로 인해 모두 제 여자 지키는데 골몰하느라 F4는 원래 음악회 참석 목적이었던 정치계 인사들과의 인사는 뒷전이었다.

이런 상황을 모르는 여성들은 그저 멍하니 F4 주변을 맴돌기만 할 뿐이었다.

 

 

-연아의 집 근처-

 

연아는 지친 몸을 이끌고 지하철에서 내려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갔다.

가뜩이나 일도 많은데 국과수 동료 법의관 한 명이 급히 분소로 파견을 나가는 바람에 일이 대폭 늘어나 최근에는 야근이 일상이 되어버린 터였다.

우빈마저 일본으로 출장을 가버렸기 때문에 혼자서 집으로 가자니 어딘지 모르게 허전했다.

 

피곤한 마음에 지름길인 연립주택단지를 지나가는데 뒤에서 뭔가 무거운게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싶어 뒤를 돌아본 연아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검은 옷에 모자를 쓴 남자가 연립주택에서 내려와 길에 떨어져있던 배낭을 집어들고 있었다.

연아는 본능적으로 저 남자가 범죄자라는 것을 깨닫고 소리를 질렀다.

 

연아: 이 봐! 거기 꼼짝 마!

 

남자는 소리를 지른 연아를 보더니 잠시 멈칫하다가 서서히 연아에게 다가갔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를 보고 연아는 재빨리 가방에서 3단 우산을 꺼내 펴기 시작했다.

 

우빈: 김연아! 도망가!

 

연아는 갑자기 주변에서 들리는 우빈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봤다.

지금 일본에 있어야 할 우빈이 수상한 남자 뒤에 서 있었다.

 

연아: 우빈씨!

 

그 남자는 연아와 우빈 사이에서 잠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연아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남자의 손에는 가로등 불빛을 받아 뭔가 번쩍거리는 것이 보였다.

 

우빈은 그 남자의 손에 있는 물건이 칼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사색이 되어 연아에게 달려갔다.

연아가 너무 걱정되어 3일 출장 일정을 이틀로 단축하고 귀국하자마자 차를 몰고 왔는데, 지금 눈앞에서 위험에 처한 연아를 보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피곤함도 잊고 저 남자를 제압하기 위해 죽기 살기로 뛰었다.

 

연아는 도망가라는 우빈의 외침과는 달리 침착한 얼굴로 제 자리에서 우산을 죽도처럼 꽉 쥐고 있을 뿐이었다.

수상한 남자는 이제 팔만 뻗으면 연아에게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고, 우빈은 아직 몇 걸음 뒤에 있었다.

우빈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려던 찰나, 연아가 팔을 들어 우산을 높이 치켜올리더니 고함을 질렀다.

 

연아: 머리! 허리!

 

연아의 우산이 정확하게 그 남자의 머리와 허리를 가격했다.

예상밖의 공격에 남자는 비틀거렸고, 우빈은 놀라서 저도 모르게 멈춰섰다.

연아는 다시 한 번 비틀거리는 남자를 공격했다.

 

연아: 손목!

 

연아의 우산이 칼을 든 손목을 내려치자 금속음을 울리며 수상한 남자의 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우빈은 정신을 차리고 그 남자에게 달려들어 주먹과 발을 날렸다.

결국 남자는 우빈의 공격에 쭉 뻗어버리고 말았다.

 

우빈: 연아씨. 괜찮아?

연아: 우빈씨가 왜 지금 여기에 있는 거야? 원래 일본에 있어야 하는 거잖아.

 

연아가 놀란 토끼가 되어 바라보자 우빈은 씩 웃으며 연아를 안아줬다.

 

우빈: 우리 lady가 너무너무 걱정되어서 얼른 돌아왔어.

 

연아는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하며 우빈의 품에서 몸을 빼냈다.

 

연아: 하, 우빈씨. 내가 내 한몸은 건사할 능력 있다고 말했잖아.

우빈: 난 그런 말 들은 기억 없는데.

연아: 나 이래뵈도 검도 유단자란 말야.

의사가 되려면 체력이 필수라고 해서 의대 들어가자마자 배우기 시작했다구!

 

뜻밖의 얘기에 이번엔 우빈의 눈이 커졌다.

이렇게나 여려보이는 연아가 검도 유단자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우빈: 진짜야? Lady 알렉스 검도해?

연아: 지금 저 인간 처리한 거 보고도 못믿어?

우빈: 그럼 진검으로도 해봤어?

연아: 당연하지. 진검 사려다가 부모님이 결사반대해서 관뒀다고.

우빈:(허탈하게 웃으며) 정말 lady 나 여러 번 놀라게 한다.

연아: 뭐야~ 내 뒷조사할 때 그런 건 빼먹은 거야?

난 우빈씨가 다 알고 있는 줄 알았어.

 

우빈은 할 말이 없어서 그저 연아의 얼굴만 바라봤다.

연아는 고개를 절래절래 젓더니 휴대전화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연아: 장형사님, 여기 수상한 인간 하나 있으니 잡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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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시간이 지나 장형사가 차를 몰고 와서 연아와 우빈에게 두들겨맞은 남자를 체포했다.

우빈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연아에게 거듭 고맙다고 웃으며 인사하는 장형사를 관찰했다.

장형사는 30대 초반의 외모에 키도 175cm로 그닥 작지 않은데다 몸매도 날렵한 편이었다.

인상도 강력계 형사답지 않게 서글서글한데다 약간은 어벙해보였다.

어쩐지 연아에게 관심을 보이는 거 같아서 우빈은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연아와는 얼마나 자주 만날까 의구심이 들려던 찰나였다.

 

장형사:(쑥스럽게 웃으며) 정말 뭐라 감사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요새 부녀자 연쇄살인사건땜에 윗선에 들들 볶이고 있었는데 이 날다람쥐 녀석을 대신 잡아주시고...

연아:(호기심 보이며) 이 사람 꽤 규모있는 도둑인가봐요?

장형사: 최근에 강북 날다람쥐라고 해서 강북 경찰서의 숨은 골칫거리였거든요.

김선생님 덕분에 내일 하루만이라도 서장한테 볶이지 않게 됐습니다. 하하

연아:(손을 내저으며) 뭘요~ 운이 좋았죠.

 

연아가 겸연쩍게 웃자 우빈은 슬그머니 팔을 뻗어 연아의 어깨를 감싸주었다.

 

우빈: 우리 연아씨가 부검에 범인까지 잡고 정말 다재다능하지 않아요?

이런 법의관 정말 드물거에요.

 

연아는 우빈의 태도에 화들짝 놀라 어깨를 움직였지만 우빈의 팔은 떨어지지 않았다.

장형사는 우빈의 암묵적인 연인선언을 눈치채고는 수줍게 연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장형사: 암튼 정말 고맙습니다, 김연아 선생님.

담에 기회가 되면 꼭 소주라도 사겠습니다. 선생님 애인도 함께요.

연아: 아유, 별말씀을요... 자판기 커피나 한 잔 사주시면 돼요.

장형사: 아 그래도 그렇죠...

 

연아는 장형사의 손을 잡고 악수를 나누면서 따듯하게 웃었다.

그 모습이 은근히 마음이 들지 않은 우빈은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우빈: 정 고마우면 빨리 그 부녀자 연쇄살인범 좀 잡아주시죠.

우리 연아씨가 아무리 검도 유단자라도 제가 안심이 안되어서 말이죠.

 

장형사는 재빨리 악수하던 손을 빼내고는 멋쩍게 웃었다.

 

장형사: 네... 그래야죠... 암튼 두 분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장형사는 다시 한번 연아와 우빈에게 고개숙여 인사하고는 차를 타고 자리를 떠났다.

남은 연아와 우빈은 서로를 바라봤다.

후련해하는 우빈과 달리 연아는 불만섞인 표정이었다.

 

우빈: 왜 그래?

연아: 우빈씨, 왜 장형사님한테 틱틱거리는 거야?

우빈:(인상쓰며) Lady, 지금 저 인간 챙겨주는 거야?

연아: 챙겨주는게 아니라 우빈씨가 은근히 장형사님한테 뚱하게 대해서 그래.

우빈: 난 저 사람이 연아씨한테 흑심있는 거 같아서 맘에 안들어.

그리고 lady 알렉스가 너무 친절하게 대하는 것도 기분 별로야.

 

연아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아무래도 우빈이 오해를 하고 있는게 분명했다.

 

연아: 우빈씨, 오해하지 마.

다른 경찰들, 특히 나이 많은 반장급들이 나 젊은 여자라고 은근히 무시하는데, 장형사님은 예의를 차려주신단 말야.

나도 그게 고마워서 친절하게 대하는 거 뿐야.

우빈: 근데 왜 그렇게 반짝이는 눈으로 그 인간 보는 거야? 설마하니 두개골이 탐나서?

연아:(깜짝 놀라서) 어떻게 알았어?

우빈: (버럭) 뭐야? 진짜 그런 거야?

연아: 무지 재미있게 생겼잖아. 저런 짱구머리 두개골 요새 애들한텐 보기 힘들다고.

 

어느새 재미있다는 듯 웃는 연아를 보고 우빈은 어이가 없었다.

연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우빈에게 팔장을 꼈다.

 

연아: 우빈씨, 장형사님 질투했구나?

우빈: 아, 아냐. (얼굴 붉어진다)

연아:(다정하게) 저번에도 말했듯이 내 눈엔 우빈씨 두개골이 제일 멋있어.

아니, 나한텐 우빈씨외의 다른 남자들은 남자로 보이지도 않는다구.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내겐 우빈씨뿐이야.

 

우빈은 뜻밖의 고백에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돌려 연아를 봤다.

자신을 향해 수줍게 웃고 있는 연아의 볼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우빈은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어느 새 연아의 이마에 우빈의 입술이 내려왔다.

연아는 팔을 뻗어 우빈의 허리를 감싸안았고, 우빈도 연아를 꼭 안아주었다.

 

우빈: 쓸데없이 질투해서 미안. 앞으로는 무조건 lady만 믿을게.

연아: 응. 약속이야.

 

서로의 향기에 탐닉하던 두 사람의 몸이 자연스럽게 떨어졌다.

손목시계를 흘깃 본 연아가 갑자기 소리쳤다.

 

연아: 으아~ 벌써 새벽 한 시야. 얼른 들어가자.

우빈씨도 피곤하겠다. 이만 들어가서 자.

 

우빈은 장난기어린 표정으로 씨익 웃더니 두 손으로 리라의 얼굴을 감쌌다.

연아가 놀란 얼굴로 우빈을 바라보자 나지막히 속삭였다.

 

우빈: 아무리 늦어도 굿나잇 키스는 해야지.

 

말이 끝나자마자 우빈은 거침없이 연아의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당황한 연아가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우빈은 오히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혀를 연아의 입에 집어넣고 진하게 프렌치 키스를 했다.

우빈이 연아의 입속을 잔뜩 헤집어 달콤함을 마음껏 맛본 후 입술을 떼자 연아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우빈은 만족스럽게 웃고는 다시 한번 연아에게 베이비 키스를 했다.

 

우빈: 집 앞까지 바래다 줄게.

 

싱글벙글 웃는 우빈의 얼굴을 보고 얼굴이 붉어진 연아는 겨우 숨을 고르게 하고는 대답도 없이 먼저 걷기 시작했다.

우빈은 연아를 놓칠세라 재빨리 쫓아가서 연아의 손을 잡았다.

 

연아:(당황해서) 우빈씨...

우빈: 얼른 가자. 피곤할 텐데.

 

연아는 더욱 손을 꼬옥 쥐고는 앞장서서 걷는 우빈의 뒷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으며 따라갔다.

두 사람의 사이가 한결 가까워진 걸 느낀 그 5월의 밤에는 아카시아 꽃향기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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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나름 CSI 분위기를 내려고 조금 노력했는데 어떠신지 모르겠네요 홍홍

전에 말했다시피 연아의 롤모델은 바로 CSI 마이애미의 섹시한 검시관 알렉스 여사라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