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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박준영의 '헌정'이 채송아 마음을 돌린 이유

지혜의 여신 2021. 5. 9. 23:06
박준영[김민재]의 졸업 연주회 '헌정'

이 드라마는 클래식 애호가들이라면 좋아할 것 같다.

쇼팽 콩쿠르에서 1위없는 공동 2위를 한 피아니스트 박준영과 서울대(드라마에서는 서령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4수끝에 다시 서울대 음대에 입학한 바이올리니스트 지망생 채송아의 사랑과 성장을 그렸는데 후속 드라마가 펜트하우스라는 게 심히 어이 없을 정도로 잔잔하고 곱지만 내적으로는 치열한 드라마이다.

 

극중에서 박준영은 자신을 콩쿠르 킬러로 만들어준 지도교수에게 '피아노라도 마음대로 치면 안되나요?'라고 따지는 장면이 있다.

이 때 박준영은 (한국에서는) 쇼팽 콩쿠르 우승자(현실의 조성진)에게 밀려 한 물 갔다는 소리를 듣고 다시 입지를 다지기 위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그때 지도교수는 그렇게 치면 콩쿨 1등 못한다고 받아친다.

박준영은 최근 소위 세계 3대 콩쿠르에 우승했던 연주자들보다 못하다고 깔아뭉개기까지 하면서.

 

암튼 그 장면을 볼 때 예전에 국악과 서양음악의 차이를 수업시간에 짧게 배운게 갑자기 생각났다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서양음악은 수학 기초의 화성학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세상의 구성요소는 숫자라고 말했던 피타고라스가 현악기와 수학의 상관 관계를 정리해서 발표했을 정도이니 맞는 것 같긴 하다.

퀸의 브라이언 메이가 천체 물리학 박사이고 존 디콘이 공대 졸업생인 이유를 그 때 이해했다.

 

즉, 현악기 음악들은 철저하게 계산을 해서 만들었단 이야기다.

영화를 보면 모차르트나 베토벤같은 작곡가들이 영감을 받아서 그 느낌을 따라 작곡을 하는 것 같지만 그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는 매우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작업을 거쳐서 음악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곡은 3/4박자이고 어떤 곡은 6/8박자이고, 어떤 경우에는 다카포를 써서 처음으로 돌아가고 등등 악보에는 매우 골때리고 눈 팽팽 돌아가는 기호들로 난무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연주를 배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그건 바로 이런 수학적 논리적 체계를 익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모차르트같은 불세출의 천재가 아닌 다음에는 악보만 보고, 아니면 그냥 듣기만 하고 대번에 완벽하게 연주할 수 없다.

철저하게 기초적인 체계부터 차근차근 익혀야한다.

처음 수학을 배울 때, 처음에는 숫자를 익히고 그 다음엔 덧셈 뺄셈, 그 후에 구구단, 더 나아가 방정식, 고차 방정식, 미분 적분 이렇게 차근차근 배워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쇼팽 콩쿠르에서 형 임동민과 함께 2위 없는 공동 3위를 했던 임동혁의 유튜브 레슨에서도 같은 얘기가 나온다.

"음악은 생각보다 굉장히 논리적이에요.

감성에 치우친 연주만을 해서는 좋은 연주가 나올 수가 없어요.

머리를 써야 해요. 굉장히 많이."

 

얼핏 생각하면 마음을 따르는 연주를 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예술의 목적이라 함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데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으니 말이다.

그럼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려면 기계적으로 연주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담아 즉, 마음을 따라 연주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연주를 하기 위해서는 그 음악의 구조를 파악하고 그 구조를 잘 쌓아서 연주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비교하자면 건물을 지으려면 먼저 땅부터 잘 다진 다음에 밑바닥부터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냥 내 느낌대로, 내 마음대로 연주하면 그 음악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연주 잘했다고 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건물을 날림공사로 지어서 겉만 번드르르하면 얼핏 보면 잘 지은 거 같아도 조금만 신경써서 보면 부실공사인게 다 드러나게 되니까 말이다.

가장 극단적인 예를 든다면 '노다메 칸타빌레'의 주인공인 노다메가 그런 연주자이다.

'왜 꼭 악보대로 연주해야 하냐? 내 기분대로 연주하면 안되냐?'고 항변하지만, 그런 연주는 제대로 된 연주가 아니다.

남자 주인공인 치아키가 1권에서 그런 노다메의 연주를 듣고 어이없어 하면서 말한다.

그 웅장하고 장엄한 베토벤의 비창이 정말로 '비참'하게 들린다고.

나중에 노다메는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좋은 스승을 만나 제대로 배우고 나서야 비로소 "왜 악보대로 쳐야 하는지 알겠다"라고 말한다.

구조를 쌓아 올리는 기술이 없으면 마음을 따라 하는 연주가 불가능하다는 걸 겨우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콩쿨은 음악을 배워나가는 연주자들이 그런 음악의 구조를 얼마나 잘 파악하고 그 구조대로 얼마나 잘 쌓아올리는 연주를 하느냐를 평가하는 자리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 소년 소녀부터 젊은이들은 반복적으로 콩쿠르를 준비하면서 실력이 부쩍 늘어나게 된다고 한다.

경연곡을 구조대로 완벽하게 쌓아올리면 모든 심사위원으로부터 7~8점을 받아 우승할 수 있다.

거기에 플러스 알파로 자신의 마음을 따라가는 연주를 해야 누군가에게 10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콩쿠르에서 자신의 마음을 따라가느라 구조 쌓기에 잠깐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설령 운좋게 한 명은 10점을 줘도 나머지는 4~5점을 주게 된다.

'피아노의 숲'이라는 만화 속 쇼팽 콩쿠르에서 바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

주인공 카이의 라이벌인 슈우헤이는 본선 2차 라운드에서 연주를 하다가 무언가를 깨닫고는 구조 쌓기 대신 자신의 마음을 따르는 연주를 해버렸다.

그 부분을 보여주는 단원의 소제목은 '각성'이다.

그 결과 지도교수는 매우 흐뭇해 하면서 앞으로 잘 가르치겠다고 하지만, 슈우헤이의 아버지는 본선 중 각성하느라 완벽하게 쌓아올리는 연주를 하지 못해서 심사에 불리할 수 있다고 우려를 한다.

그리고 그 우려대로 슈우헤이는 최종 라운드에 올라가지 못하고 탈락해버린다.

슈우헤이는 자신이 성장했다고 기뻐했다가 탈락을 하자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본인 생각에는 제자리 걸음에서 벗어나 한 걸음 더 나가게 됐다고 기뻐했고 학교 지도교수도 칭찬했는데 그 결과가 최종 라운드 진출 실패로 이어졌으기 때문에 말이다.

 

박준영이 쇼팽 콩쿠르에서 1위없는 2위를 했다는 건 구조 쌓기는 거의 완벽했다는 뜻이라 본다.

그럼 그 다음 단계인 '마음을 따르는 연주'를 해야 '젊은 거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2회에서 지휘자 그 점을 지적해서 '마음을 따르는 연주'를 하면 다른 이들이 낮은 점수를 줄 지언정 10점을 주는 한 사람에게는 평생 기억될 연주가 된다고 충고한다.

 

그런데 박준영은 늘 비우고만 살아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데 어떻게 마음을 따르는 연주를 할 수 있을까.

트로이 메라이는 마음을 비우는 의식으로 연주했기 때문에 오직 그 곡만이 마음을 따르는 연주가 된 것이다.

그런데 마음을 따르는 연주가 '오늘부터 그렇게 쳐야겠다'고 결심한다고 단번에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박준영에게는 생소한 개념이라 아마 감을 잡느라고 고생을 했을 것 같다.

예상컨데 막연하게 여자친구 채송아를 생각하면서 연주했다가 은근슬쩍 삐거덕대지 않았을까.

물론 박준영은 마음만 먹으면 구조쌓기를 완벽하게 하는 연주를 할 수 있지만, 마음을 따르는 연주법을 찾느라 100% 기술에만 집중한 것도 아닌 연주였을 테니 말이다.

오죽하면 '피아노의 숲'에서도 그런 과정을 각성이라고 표현했을까.

그러니 아직 각성못한 박준영에게 지도교수가 레슨할 때마다 폭풍지적을 한다

물론 그 교수 본인은 마음을 따라가는 연주는 고사하고 구조쌓기도 완벽하게 못한다는 문제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는 오직 구조쌓기하는 법만 가르칠 수 있을 뿐이다.

 

박준영은 채송아라는 자신의 인생의 빛을 만났지만 온갖 시행착오끝에 헤어지고 말았다.

그 후 우연이 재회해 마지막이란 마음으로 채송아와 함께 브람스의 F-A-F 소나타를 연주하면서 박준영은 비로소 마음을 따르는 연주가 무엇인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 순간이 바로 그가 각성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파스까지 붙여가며 피나는 노력을 한 끝에 졸업연주회에서 친구로 왔던 채송아의 마음을 돌려세우고 확신을 준 헌정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송아에게 음악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