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책

사랑 후에 오는 것들_공지영

지혜의 여신 2009. 11. 7. 22:40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게 아니야. 그건 지옥으로 들어가는 거지.

결혼은 좋은 사람하고 하는 거야."

 

-평생 일본인 연인을 가슴에 품고 사는 아버지를 사랑하지만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엄마가 홍에게 해주었던 충고.

 

 

 

"사랑하면 말이야.  그 사람이 고통스럽기를 바라게 돼. 다른 걸로는 말고 나 때문에.

나 때문에 고통스럽기를, 내가 고통스러운 것보다 조금만 더 고통스럽기를......"

 

-홍이 술을 마시면서 자신을 짝사랑하는 소꼽친구 민준에게 하는 말.

 

 

 

"잊지 못할 줄 몰랐어. 실은 잊지 못할 줄 알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오랫동안 잊지 못할 줄은 몰랐던 거야.

결국 넌 영원히 나와 함께 살아가게 된 거야. 어쩌자고 돌아왔니. 이 나쁜 자식아, 이 나쁜 자식아."

 

-홍이 갑자기 준고와 재회한 후 복잡한 마음으로 잔뜩 술마시고 집에 들어와서 혼자 하는 넋두리.

 

 

 

문제는 사랑이 사랑 자신을 배반하는 일 같은 것을 상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랑에도 유효 기간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사랑의 속성이었다.

우리는 사랑이 영원할 거라고 믿게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사랑이 가지고 있는 속임수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사랑의 빛이 내 마음속에서 밝아질수록 외로움이라는 그림자가 그만큼 짙게 드리워진다는 건 세상천지가 다 아는 일이었지만, 나만은 다를 거라고, 우리의 사랑만은 다를 거라고 믿었다.

그것 자체도 사랑이 우리를 속이는 방식이라고 지희는 분석하곤 했었다.

 

 

'지금 울고 있느냐?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고통과 불안이 사랑이라고 믿는다면 아프리카로 떠나라.

당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널려 있다.'

 

 

 

'... 이 거대한 유기체인 자연조차 제 길을 못 찾아 헤매는데, 하물며 아주 작은 유기체 인간인 네가 지금 길을 잃은 것 같다고 해서 너무 힘들어하지는 마. 가끔은 하늘도 마음을 못 잡고 비가 오다 개다 우박 뿌리다가 하며 몸부림치는데 네 작은 심장이 속수무책으로 흔들린다 해도 괴로워 하지 마.

  그냥 시간에게 널 맡겨 봐. 그리고 너 자신을 들여다봐. 약간은 구경하는 기분으로 말이야. 네 마음의 강에 물결이 잦아들고 그리고 고요해진 다음 어디로 흘러가고 싶어하는지, 눈이 아프도록 들여다 봐. 그건 어쩌면 순응 같고 어쩌면 회피 같을지 모르지만 실은 우리가 삶에 대해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대응일지도 몰라. 적어도 시간은 우리에게 늘 정직한 친구니까. 네 방에 불을 켜듯 네 마음에 불을 하나 켜고...... 이제 너를 믿어 봐. 그리고 언제나 네 곁에 있는 이 든든한 친구도.'

 

- 친구 지희가 준고 때문에 눈물흘리는 홍을 위로하는 편지 

  

 

"나이가 들면 자신이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때로는 축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단다."

 

-홍이 준고와 헤어지고 한국으로 돌아와 요양중인 할아버지를 병간호하던 중 들었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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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부쩍 추워져서일까.. 이 소설이 몹시도 읽고 싶어졌다.

역시 공지영은 에쿠니 가오리보다 훨씬 더 글을 잘 쓴다.^^

 

일본으로 어학 연수를 와서 가족을 버리고 오래된 빙하가 잘려 나간 것 같은 차가운 눈을 가진 준고와 열렬히 사랑을 하고 결혼을 약속했지만 결국 외로움에 지쳐 결국 한국으로 돌아와 7년동안 준고를 그리워만 했던 홍.

거짓말처럼 준고는 성공한 소설가가 되어 한국으로 와서 홍과 재회하고 오랜 소꼽친구인 민준의 청혼을 동시에 받아 혼란스러워하지만 결국 둘 다 이별하기로 결심한다.

그렇지만 준고는 일본으로 돌아가는 날 결국 다시 홍을 찾아가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홍은 우리가 나빴다고 말하며 손을 잡고 함께 달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

 

냉정과 열정 사이같은 모호함이 아닌 나름 해피 엔딩으로 끝나 만족스러웠다.

주옥같은 글도 다시 가슴에 와닿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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