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기억의 주인_다음 이야기

에필로그.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지혜의 여신 2009. 10. 3. 02:50

-런던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 박물관-

 

가을은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 박물관(V&A Museum)에서 이정과 함께 작품을 감상하는 중이었다.
지후의 배려로 여름 휴가를 일찍 받아 런던에서 열리는 이정의 전시회를 보고 있었다.

예전 우송에서 열렸던 V&A 박물관 도예전에 온 적은 있었지만 실제 런던의 박물관에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고풍스러우면서도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이곳에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물론 가을의 눈에 이 박물관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이는 바로 이정과 이정의 작품이었다.
이렇게 멋진 도예가 소이정이 자신의 약혼자라는게 새삼 믿겨지지 않는 가을이었다.
이정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려고 했지만 저도 모르게 자꾸만 이정의 자신감있는 얼굴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이정:(장난스럽게) 이런 불량한 관람객이네. 도예가의 설명에는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얼굴만 보고.
가을:(배시시 웃으며) 워낙 도예가님이 근사해서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가는걸 어떻게 해요.
이정: 이거 곤란한데. 그 잘생긴 도예가한테는 이미 약혼녀가 있는데 말야.
가을: 훗, 다행히도 그 복많은 약혼녀가 바로 본인이랍니다.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보며 환하게 웃으며 팔짱을 꼈다.
박물관 직원들과 관람객들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면서 보기 좋다는 듯 작게 휘파람을 불거나 웃으면서 자기들끼리 소곤거렸다.
곧 한 직원이 이정에게 다가와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다 되었다고 알렸다.
이정은 가을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을 하고는 직원을 따라갔다.

 

 

-리젠트 공원-

 

전시회 시간이 끝나고 이정과 가을은 리젠트 공원으로 갔다.
가을이 꼭 가고 싶어했던 리젠트 공원의 '메리 여왕의 정원'에는 장미꽃 백만송이가 만개해 더없이 아름다웠다.

 

가을: 꺄~ 정말 정말 예뻐요. 캔디에 나오는 장미정원이 현실로 나온 거 같아요.

 

좋아서 어쩔줄 몰라하는 가을을 보고 있자니 이정은 저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정: 삼각대 안가져온 거 후회해?
가을:(고개 끄덕) 솔직히 그래요. 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런던 사람들은 좋겠어요. 공짜로 이렇게 예쁜 경치 매일매일 보고.
이정: 하지만 난 런던 사람들이 부럽지 않아.
가을: 왜요?
이정: 내겐 네가 없는 풍경은 무의미하거든.
  장미꽃이 백만송이 천만송이가 핀다해도 세상에서 가장 예쁜 추가을이 함께 하지 않으면 하나도 안예뻐.

 

가을은 이정의 말이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진심임을 알기 때문에 감격했다.

 

가을: 나도 그래요. 오빠가 없으면 백만 송이 장미도 의미없어요.
  기뻐요. 오빠와 함께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어서요.

 

이정은 제게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미소짓는 가을에게 손을 뻗어 얼굴을 감싸쥐고는 깊은 입맞춤을 했다.
가을은 흠칫했지만 여기가 한국이 아닌 런던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그대로 뜨거운 이정의 입술을 받았다.

처음 런던에 도착해서 하이드 파크를 건너갈 때 이성 커플은 물론이고 동성 커플의 거침없는 애정행각을 보고 살짝 문화 충격을 받은 가을이었다.
그래서 한국에 있을 때와는 달리 이정이 길거리같이 개방된 곳에서 시도때도 없이 키스를 하고 끌어안아도 거부하지 않았다. 
그걸 파악한 이정은 틈만 나면 가을에게 스킨십을 하면서 속으로 런던 만세를 외쳤다.

 

 

가을은 졸업 후 수암재단의 예술 자료실에 취직을 했기 때문에 리라와 같이 보내는 시간이 부쩍 늘어났다.

6월 이정의 생일이 런던 V&A 박물관 전시회와 겹치자 지후가 여름 휴가를 일찍 다녀와도 된다고 허락해준 덕에 가을은 5일 휴가를 한꺼번에 써서 9일간의 런던여행을 오게 되었다.

가을은 런던에서 1년간 어학연수를 받았던 리라에게서 여러 가지 정보를 잔뜩 받아내어 런던의 여기저기를 다녔다.

도착했던 주말은 이정과 함께였지만 평일이 되자 이정이 전시회에 참석하는 동안에는 혼자서도 잘 다니면서 선물이며 기념품도 잔뜩 샀다.

 

 

먼저 런던으로 출발했던 이정은 가을이 도착하자마자 전시회만 끝나면 가을과 함께 런던을 돌아다녔다.

한두 번 온 런던이 아니었지만 가을과 함께 다니니 모든 것이 새롭고 다 아름다워보였다.

늘 자신을 돕는 듯 훼방놓는 듯 애매한 태도를 취해 지후에게 불만이 많은 이정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지후가 고마웠다.

이국에서 가을과 단 둘이 생일을 보낸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생일날이 잔뜩 기대되었다.

 

 

 

 

 

-템즈강변-

 

 

여름 해가 워낙 길어서 11시가 되어서야 캄캄해진 런던이 마냥 신기한 가을이었다.

타워 브리지의 야경을 보면서 템즈강변을 걷던 가을은 이정에게 팔장을 꼈다.

 

 

이정: 추워?

가을: 조금. 역시 런던은 일교차가 심하네요. 낮엔 그렇게 더웠는데...

이정: 피식, 그러게. 영국은 정말 재미있는 나라야.

가을: 리라 언니는 좋았겠어요. 여기서 1년간 살아보고.

이정: 런던이 맘에 드는 모양이네.

가을: 응. 나도 여기서 어학연수 했음 좋았을 걸 그랬어요.

이정:(얼굴 찡그리며) 나두고 혼자 여기 오고 싶단 말야?

 

 

이정이 짐짓 투정섞인 질문을 하자 가을은 어이가 없어 풋하고 웃고 말았다.

최근 들어서 이정의 어리광이 심해졌다 싶었다.

 

 

가을: 오빠 만나기 전에 다녀올 걸 그랬네요.

   그럼 이렇게 전시시간 끝나자마자 나한테 끌려다닐 일은 없을텐데 말이죠.

이정: 정 그럼 신혼 여행은 런던으로 올까? 그렇게 여기가 맘에 들면.

가을:(활짝 웃으며) 좋은 생각이네요. 그럼 좀 느긋하게 런던을 즐길 수 있겠네요.

이정:(뭔가 생각난듯)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런던은 안되겠다.

가을:(눈 동그래져) 왜요?

이정:(장난스럽게) 신부가 신랑에게 관심을 가져야지, 여행지에 폭 빠지면 안되잖아.

   차라리 뉴칼레도니아가 낫겠어. 거기선 할 게 별로 없어서 나한테만 집중할 수 있잖아.

가을:(어이없어) 뭐에요~ 내가 아무렴 오빠보다 런던을 더 좋아하겠어요?

이정: 내가 지금까지 본 여자들은 다 런던에 오면 홀딱 반했거든. 너도 그런 거 같고.

   난 그 무엇이든 네가 나보다 더 좋아하는 거 싫어.

가을: 나 지금 감동받아야하는 거에요, 아님 어이없어 해야하는 거에요?

 

 

정말 가을은 이정의 말에 황당함과 감동을 동시에 느꼈다.

이렇게까지 자신을 사랑해주는 마음은 기뻤지만 런던이라는 도시까지 맘에 들지 않는다고 말해주는 건 약간 상식을 벗어난 것 같았다.

혹시 그동안 준표 선배도 잔디에게 이런 식으로 과민반응을 보여서 그렇게나 싸웠던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슬며시 들기 시작했다.

 

 

이정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지금까지 두르고 있던 스카프를 풀어서 가을의 목을 감싸주었다.

가을은 놀라움과 함께 고마움을 느끼고 이정에게 미소를 지었다.

 

 

이정:(다정하게)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리라씨한테 일교차 심하단 말 들었다면서.

가을:(스카프 더듬으며) 낮에 워낙 더워서 목을 감싼다는 걸 깜빡했어요.

이정: 하여튼 은근히 덜렁이라니까 너도.

가을:(생긋 웃으며) 그래서 싫은 거에요?

이정:(씩 웃고) 아니, 내가 이렇게 챙겨줄 수 있어서 좋아.

 

 

이정은 추위를 느끼는 가을의 어깨를 감싸안아주면서 키스를 했다.

가을도 이정으로부터 온기를 전해받으려는 듯 이정의 품에 쏙 안겼다.

 

 

 

 

 

-리츠 호텔-

 

 

런던에 와서 사람 많은 공공장소에서의 스킨십을 꺼리지 않는다해도, 가을은 이정과 같이 자려고 하지 않았다.

물론 이정도 지후와 재용의 등쌀에 못이겨 방이 두 개가 딸린 스위트룸을 예약했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를 버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가을은 당연하다는 듯이 런던에 도착한 날 밤이 되자 잘 자라는 인사만 하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이정이 붙잡으려고 했지만 가을의 목에 걸린 성모마리아 목걸이를 보는 순간, 안나 수녀와의 약속이 떠올라 포기하고 말았다.

가을은 파티 참석 때 다른 목걸이를 하는 날을 제외하면 안나 수녀에게 선물받은 성모 마리아 목걸이를 몸에서 떼지 않았다.

언젠가 이정이 왜 그렇게 그 목걸이를 항상 하냐고 묻자 가을은 웃으면서 자신의 세례명이 성모 마리아를 뜻하기 때문에 이 목걸이가 자신을 수호해준다고 답을 했었다.

그런 이유로 이정은 밤마다 안나 수녀가 선물한 정채봉 동화책을 읽으며 마음을 억지로 추스렸다.

 

 

하지만 둘째날 밤에는 결국 참지 못하고 가을의 방으로 들어가서 침대 옆 스탠드의 불을 켜고 말았다.

가을은 심난한 이정과는 달리 너무나도 곤하게 자고 있어서 감히 안나 수녀와의 약속을 깰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정은 천진한 가을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손가락으로 살짝 쓰다듬고는 가볍게 입맞춤을 하고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방을 나온 이정은 술을 한 잔 하면서 몇 달 전 현섭과의 차가웠던 대화를 떠올렸다

 

 

현섭: 그 애가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데 그래도 상관없다는 거냐?

이정:(날카롭게) 무슨 말씀이세요?

현섭: 심장이식수술은 부작용이 아주 많더구나.. 수술을 받아도 10년을 넘기는 사람이 반밖에 안된는다는데..

    벌써 그 애 수술받은지도 4년이 넘었다지?

이정: 아버진 제 행복을 시샘하시는군요. 제가 사랑과 우송을 모두 얻었기 때문에 말이죠... 

   (허탈하게 웃으며) 왜 가을이가 아버지를 불쌍하게 생각하라고 한 이유를 이제 알 거 같네요.

현섭: 뭐라고? (눈빛이 흔들린다)

이정:(표정 굳으며) 아버지의 일기일회를 놓친건 전적으로 아버지의 나약함과 비겁함 탓입니다.

   아무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반대하셨다해도 결국 우송을 포기하지 못한 아버지가 그 분의 손을 놓은

   거라구요.

   전 그런 실수 되풀이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을이를 얻을 수 있었던 거에요.

   그렇게 어렵게 얻은 가을이 제가 그렇게 쉽게 사신에게 넘길 거 같아요?

   그럴 일도 없겠지만 혹시라도 가을이에게 사신이 다가오면 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을이 살릴

   겁니다.

현섭:(억지 조소) 대단한 자신감이구나.

이정: 어차피 우린 모두 시한부 인생이에요. 내일 죽을지, 10년후에 죽을지 아무도 몰라요.

   그렇다면 지금 이순간 행복하게 살아야하지 않을까요?

   아버지처럼 껍데기뿐인 불쌍한 삶을 선택할 일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가을인 강해요. 분명히 날 위해서 오래오래 내 곁에 있어줄 거에요.

   아버지가 아무리 저주를 한다고 해도 가을이가 빨리 세상을 떠나는 일따위 절대 없어요.

 

이정은 말없이 현섭의 당혹감이 섞인 얼굴을 바라보았다.

왜 불과 몇 년 전까지 자신이 눈앞의 아버지라는 인간에게 휘둘렸는지 새삼 의아할 지경이었다.

그동안 현섭이 포기하지 않고 본인과 똑같은 길을 자신에게 강요하는 이유를 이정은 이제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껍데기밖에 없는 텅 빈 자신의 삶을 정당화시키려는 현섭만의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는 것을.

유감스럽게도 이정은 가을의 따스한 사랑과 끝없는 이해와 용서로 마음의 상처를 치료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현섭이 태산처럼 크게 보이지 않았다.

 

 

이정: 불쌍한 사람의 넋두리에 휘둘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아무리 절 흔들려고 해도 전 이제 흔들리지 않아요. 왜냐면 제겐 가을이가 있으니까요.

   똑똑히 보여드리죠. 아버지가 잃어버린 후 평생 외면했던 '사랑이 가득한 삶'이 무엇인지를요.

 

 

현실로 돌아온 이정은 씁쓸하게 웃으며 술을 마저 마셨다.

가을의 몸상태에 대해서 누구보다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

은재처럼 준비없는 이별을 하지 않기 위해서, 영원히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서 항상 가을이 무리하지 않을까 지켜보고 있었다.

 

가을의 졸업을 앞두고 수암에 가을의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부탁했을 때 지후도 현섭과 비슷한 우려를 했었다.

 

 

이정: 만일 사자(死者)가 가을이를 데리러 온다면 체스 시합을 해서라도 물리칠 거야.

지후:(씩 웃으며) 아주 멋진 생각인 걸. 시지포스를 벤치마킹하다니 말야.

 

 

자신의 마음을 지후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부탁대로 일부러 일반 도서관에 취직하려던 가을에게 자리를 주었다는 사실은 잔디도, 리라도 몰랐다.

 

지금 이 행복을 방해하려는 사람은 그 누구도 가만두지 않겠다고 새삼 다짐하면서 이정은 소파에서 가을의 방문을 보며 미소를 던졌다.

‘잘 자, 내 천사 아가씨.’

 

 

 

 

 

-Her Majesty Theatre=

 

 

가을은 런던에 도착하고 4일째 되던 날, 리라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런던 광광 필수코스라고 강조한 ‘오페라의 유령’을 예매하고 이정과 함께 전용 극장에 도착했다.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 중 하나라는 설명처럼 이 극장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한껏 풍기는 한편, 좌석이 매우 좁아서 커플석처럼 자연스럽게 이정과 가을의 팔이 닿았다.

 

 

이정은 오래전 은재와 함께 한국에서 봤던 공연을 런던에서 가을과 함께 오리지널 공연을 보게 되어 기분이 약간 묘했다.

하지만 그 묘한 기분은 공연이 시작하자 금방 사라졌다.

예상외로 가을이 초반부에 샹들리에가 올라갈 때 깜짝 놀라면서 이정의 손을 꼭 잡더니, 1막이 끝날 무렵에는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인 샹들리에가 떨어지는 장면에서 이정에게 안기다시피 몸을 기댔기 때문이었다.

 

가을은 자신이 이정에게 몸을 완전히 기울였다는 걸 인식하지 못한 상태로 크리스틴과 라울의 이중창 ‘All I ask of you'를 들으며 두 사람의 사랑에 폭 빠져버렸다.

 

 

 

라울: No more talk of darkness, 이제 어둡고 무거운 얘기는 하지 말아요.

        forget these wide-eyed fears. 그리고 모든 두려움을 잊어버려요.

        I'm here, nothing can harm you, 내가 여기 있으니, 아무도 당신을 해칠 수는 없어요.

       my words will warm and calm you. 내가 당신을 따뜻하고 편안하게 지켜줄게요.

       Let me be your freedom, 당신을 자유롭게 해드릴께요.

       let daylight dry your tears. 따뜻한 햇살이 되어 당신의 눈물을 다 마르게 하겠어요.

       I'm here, with you, beside you, 내가 여기, 당신의 바로 곁에 있잖아요.

      to guard you and to guide you. 당신을 지켜주고, 당신을 이끌기 위해서요.

 

크리스틴: Say you love me every waking moment, 당신이 깨어있는 모든 순간 순간마다 나를 사랑하고 있

         고 말해주세요.

         turn my head with talk of summertime. 아름다운 이야기로 나를 위로해주세요.

         Say you need me with you now and always, 내가 당신과 항상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해주세요.

         promise me that all you say is true, 당신이 말하는 것은 모두다 진실이라고 약속해주세요.

         that's all I ask of you. 그것이 내가 당신께 바라는 전부입니다.

 

라울: Let me be your shelter, 내가 당신의 안식처

        let me be your light; 당신의 빛이 되어 드릴께요

        you're safe, no on-e will find you, 당신은 안전해요, 누구도 당신을 찾아낼 수 없을 거예요.

        your fears are far behind you. 이제 모든 두려움은 당신을 떠났답니다.

 

크리스틴: All I want is freedom,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자유뿐이에요.

              a world with no more night, 더 이상은 암흑의 밤이 없는 세상.

              and you, always beside me, 그리고, 당신이 항상 내곁에 있다는 것..

              to hold me and to hide me. 나를 지켜주고 보호해줄 당신이..

 

라울: Then say you'll share with me on-e love, on-e lifetime, 나와 함께 영원한 사랑을 나누고, 일생토록

        함께 살고 싶다고 말해주세요.

        let me lead you from your solitude. 암울한 고독으로부터 당신을 이끌어드리겠어요.

        Say you need me with you, here beside you, 여기, 당신 곁에 내가 있었음 좋겠다고 그렇게 말해주

       세요.

       anywhere you go, let me go too, 당신이 어딜 가든, 나도 함께 가겠어요.

       Christine, that's all I ask of you 크리스틴, 내가 바라는 것은 그 뿐이에요.

 

크리스틴: Say you'll share with me on-e love, on-e lifetime. 이제 우리는 영원히 함께일 거라고 말해주세

              요.

              say the word and I will follow you. 그렇게 말해준다면, 난 당신을 따르겠어요.

             Share each day with me, 언제나 우리 함께 하기를,

             each night, each morning. 밤에도, 낮에도 함께이기를.

             Say you love me! 날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라울: You know I do. 알고 있잖아요. 이미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라울 & 크리스틴 : Love me, that's all I ask of you. 날 사랑해 주세요,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Anywhere you go, let me go too, 당신이 어딜 가든, 나는 언제나 당신과 함께 할 것이니까요.

                Love me, that's all I ask of you. 나를 진정 사랑해 주세요, 그게 내가 당신께 바라는 전부입니다

 

 

 

가을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채로 박수를 치자, 이정은 그런 가을을 보면서 가사를 곱씹었다.

아주 순간적으로 크리스틴을 노리는 오페라의 유령이 가을을 노리는 죽음의 신으로 보였다.

그리고 라울처럼 자신도 가을을 지켜주고 싶고, 항상 함께 하면서 사랑하고 싶었다.

 

 

2막이 되자 이정은 라울에게 완전히 몰입해서 가을의 손을 꽉 잡은 상태로 공연을 봤다.

공연중에 크리스틴이 사라지고 라울이 극장 밑 지하호수로 크리스틴을 찾으러 가는 동안 이정 자신의 손에도 땀이 차기 시작했다.

마침내 크리스틴과 라울이 함께 유령의 은신처에서 벗어났을 때 이정은 긴장이 풀리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오페라의 유령도 사라지면서 공연이 끝나자 가을은 이정의 손에서 제 손을 빼내 열심히 박수를 쳤지만, 이정은 축 늘어진 채 무심히 환호하는 가을의 옆모습만 바라봤다.

 

 

 

 

극장을 나오면서 가을은 의아하단 얼굴로 이정을 바라봤다.

 

 

가을: 오빠, 그렇게 오페라의 유령에 몰입한 거에요?

   꼭 크리스틴을 구한 라울처럼 탈진한 거 같았어요.

이정: 응. 꼭 내가 라울이 된 거 같았어.

 

 

예상외의 답변에 가을은 눈이 동그래지더니 금새 풋하고 웃으면서 농담을 했다.

 

 

가을: 오빠가 라울이면 난 크리스틴이네요.

이정:(진지하게) 맞아. 크리스틴이 꼭 너처럼 보였어.

가을:(눈 휘둥그레) 오빠?

 

 

이정은 발걸음을 멈추고 가을의 어깨를 잡아 자신과 마주보게 했다.

갑작스러운 이정의 행동에 가을은 그저 놀란 얼굴로 이정을 바라볼 뿐이었다.

가을을 바라보는 이정의 표정에는 간절함이 담겨있었다.

 

 

이정: 만약 네가 크리스틴처럼 어디론가 가게 된다면... 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널 찾아낼 거야.

   그리고 널 다시 되찾아올 거야.

가을:(당황) 왜 그런 말을 해요... 난 항상 오빠랑 함께 할텐데...

이정: 누구에게도 널 내주지 않아. 절대로...

 

 

이정은 극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못한 채 가을을 꼭 끌어안고는 얼굴을 가을의 풍성한 머리카락 속으로 묻었다.

그 무엇보다도 달콤한 가을의 향기를 맡으며, 가을의 심장이 규칙적으로 내는 고동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가을은 이정이 너무 ‘오페라의 유령’에 빠진듯해, 이정을 현실로 데려오기 위해 몸을 빼냈다.

 

 

이정:(멍하니) 가을아...

가을:(다정하게) 우린 크리스틴과 라울이 아니에요. 우릴 쫓는 유령도 없구요.

   잊었어요? 우린 올해 안으로 결혼하기로 했잖아요.

 

 

가을이 가만히 제 손으로 이정의 뺨을 쓰다듬자 이정은 말없이 그 손을 잡고는 입술로 가져갔다.

가을은 이정을 안심시키기 위해 미소를 지어주고는 이정의 손을 잡아 끌었다.

 

 

가을: 오빠, 우리 따듯한 차 한잔 마셔요. 바람이 좀 찬 거 같지 않아요?

이정:(정신 차리고) 응? 그래...

가을:(농담으로) 일현 오빠가 지금 여기 있음 좋겠네요.

   그럼 아주 예쁜 별이랑 하트를 그려서 라떼를 줄텐데요.

이정:(발끈) 왜 런던까지 와서 형을 찾는 거야?

가을:(짐짓 흘겨보고) 세상에, 이젠 자기 형까지 질투하는 거에요?

   누구보다도 우리 이어주려고 애써준 사람이 바로 일현 오빠인데.

이정:(움찔) 아니... 여기에도 좋은 바리스타 많잖아...

가을: 그러니까 얼른 가요. 여기 계속 있으면 감기 걸리겠어요.

 

 

가을은 이정이 이제 정신을 차렸다 싶어 안심하면서 이정의 팔에 제 팔을 끼고는 아직 환한 런던의 저녁거리를 걸었다.

 

 

 

 

 

 

-이정의 생일날 오후, 런던 아이-

 

 

이정과 가을은 런던 아이 안에서 생일 축하 파티를 하고 있었다.

이정은 전시 시간이 끝나자마자 가을의 호출을 받고 서둘러 런던 아이로 뛰어와서는 가을의 독촉으로 얼떨결에 이 투명한 관람차를 탔다.

넓은 런던 아이 안에는 가을과 자신 둘만 있어 약간 어리둥절해했다.

그런 이정에게 가을은 특유의 환한 웃음을 지으며 작은 케이크를 꺼내 초를 꽂고는 불을 붙이면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그제서야 이정은 이게 가을이 준비한 이벤트라는 것을 깨닫고 밀려오는 행복감으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가을: 오빠 빨리 불 꺼요. 소원도 빌구요.

 

 

가을의 말에 따라 이정은 촛불을 껐다.

 

 

이정: 내가 한방 먹었는데. 런던에서 이렇게 멋진 생일 축하를 받을 줄은 몰랐어.

가을: 리라언니한테 고마워하세요.

이정: 리라씨 아이디어였어?

가을:(고개 끄덕) 응.

이정: 그래도 정말 고마워 가을아. 결국 이 모든 걸 준비한 건 너니까 말야.

가을: 고맙단 말은 선물을 받고 난 담에 해야죠. 짜짠~

 

 

가을은 생긋 웃으면서 작은 종이가방을 내밀었다.

이정도 기대가 담긴 표정으로 선물을 받아 포장을 풀었다.

예상 밖으로 가을의 선물은 처음 보는 청보라색 꽃을 수놓은 스카프였다.

 

 

이정:(의아) 이건 무슨 꽃이야?

 

 

의아해하는 이정에게 가을은 다정하게 웃어주며 설명을 했다.

 

 

가을: 오빠의 탄생화에요. 뚜껑별꽃이라는 꽃인데 꽃말은 추억이래요.

이정: 추억?

가을:(고개 끄덕) 이번에 알게 됐는데 이 꽃은 보라별꽃이라고도 부른대요.

   우리나라에선 제주도처럼 남쪽에서 피는데 야생화답지 않게 우아하고 섬세해요.

   오빠처럼 사람들이 많이 사랑하는 꽃이래요.

이정: 내가 이 꽃이랑 비슷해?

가을: 응. 오빠처럼 이 꽃도 보자마자 확 반해버렸어요. 추억이라는 꽃말도 맘에 들고요.

이정:(꽃을 들여다보며) 추억이라...

 

 

가을은 이정이 선뜻 선물에 대해 좋다거나 싫다는 말을 하지 않자 약간 긴장되기 시작했다.

과거 자신을 혐오했던 이정이었기에 하나씩 이정에 대한 좋은 점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정의 탄생화를 수놓은 것이었는데 반응이 없어서 순간 후회도 들었다.

 

 

가을: 지금까지도 우린 많은 추억을 만들었지만... 앞으로 우리 더 많은 추억을 만들 거잖아요.

   그래서 난 이 꽃이 참 좋아요. 로즈마리랑 색깔도 비슷하고.

이정:(조용히) 너는 기억, 나는 추억...

가을:(못들었다) 예?

이정:(씩 웃으며) 나는 추억을 만들고 너는 그걸 기억하는구나.

가을:(활짝 웃으며) 그러네요. 우리 그런 의미에선 정말 천생연분인 거 같지 않아요?

이정: 그러게.

 

 

가을은 이정이 정말로 웃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케이크에서 초를 빼내고는 작은 포크를 꺼내 이정의 손에 쥐어주었다.

 

 

가을: 자, 얼른 맛 좀 봐요. 이번엔 내가 직접 만든 케이크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거 고르느라 런던의 케이크

   가게를 얼마나 뒤졌는지 몰라요.

 

 

그러고 보니 이 미니 케이크는 뚜껑별꽃같은 청보라색 설탕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가을이 이런 케이크를 찾기 위해 얼마나 런던을 헤맸을까 싶어 이정은 가슴이 찡해졌다.

 

 

이정: 고마워. 네가 만들었다고 생각할게.

가을:(생긋 웃으며) 그래주면 고맙죠.

 

 

가을은 이정이 케이크를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가을: 케이크 어때요? 맛있어요?

이정: 훗, 궁금해?

 

 

가을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정은 의미심장하게 웃더니 가을에게 다가갔다.

‘지금 뭘 하려고?’라는 표정으로 멀뚱히 이정을 보던 가을은 막판에야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

이정은 한 손으로 가을이 도망가지 못하게 어깨를 잡고는 다른 한 손으로 뒷통수를 감싸쥐면서 가을의 입술을 제 입술로 덮어버렸다.

미처 다물지 못한 입안을 가르고 들어온 이정의 혀와 함께 케이크의 달콤한 맛과 향이 가을의 입안을 가득 채웠다.

당황한 가을은 버둥거렸지만 어느새 어깨를 잡던 이정의 손은 가을의 허리를 감싸안아 이정의 몸에 꼭 붙여버리고 말았다.

케이크의 달콤함과 이정의 향기에 취한 가을은 어느새 저도 모르게 이정의 셔츠깃을 꼭 잡고 매달렸다.

 

 

투명한 벽을 통해 이정과 가을의 프렌치 키스를 보던 위아래 칸에 있던 관광객들이 환호성을 올리며 박수를 쳤지만 두 사람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전히 해가 지지 않은 환한 런던의 푸른 하늘이 두 사람을 축복하는 듯했다.

 

 

 

 

 

 

-그날 저녁, 리츠 호텔-

 

 

이정과 가을은 거실에서 런던의 야경을 감상하며 와인을 마셨다.

 

 

이정: 가을아, 내 소원 들어줄래?

가을:(눈 동그래지며) 뭔데요?

이정: 네 노래가 듣고 싶어.

가을:(방긋 웃으며) 뭐가 듣고 싶어요? 모르는 거 시키면 안돼요.

이정: 전에 금잔디 생일날에 불렀던 노래 기억하지?

가을: 권진원의 Happy birthday to you요? 그게 듣고 싶어요?

이정:(고개 끄덕) 응.

가을: 알았어요.

 

 

가을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이정을 바라보았다.

잔뜩 기대하는 이정의 눈빛이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가을은 이정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가을: 이슬비가 내리는 오늘은 사랑하는 그대의 생일날

        온종일 난 그대를 생각하면서 무엇을 할까 고민했죠

        난 가까운 책방에 들러서 예쁜 시집에 내맘 담았죠

        그 다음엔 근처 꽃집으로 가서 빨간장미 한송일 샀죠

        내려오는 비를 맞으며 그대에게 가는 길 너무 상쾌해

        품속에는 장미 한송이 책 한권과 그댈 위한 깊은 내사랑

        아름다운 그대를 만난건 하느님께 감사드릴 우연

        작은 내맘 알아주는 그대가 있기에 이세상이 난 행복해

        너무 너무나 행복해 Happy birthday to you

 

 

이정의 박수에 가을은 약간 상기된 뺨을 양손으로 감싸며 소파에 앉았다.

그런 가을을 보며 이정은 와인잔을 다시 채워주었다.

 

 

이정:(환하게 웃으며) 고마워.

가을: 오빠가 좋아해줘서 나도 기뻐요.

 

 

이정과 가을은 잔을 부딪히고는 와인을 다시 마셨다.

두 번째 잔이 대충 비어갈 때쯤 이정은 손을 뻗어 가을의 손에서 잔을 빼냈다.

가을은 취기가 올라오는 거 같아 그만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을: 음~ 나 이제 슬슬 취하려나봐요. 이만 잘게요.

이정: 나 소원 하나 더 남았는데 들어줄 수 있어?

 

 

가을은 소파에서 일어나려다 ‘또 뭐가 남았나’하는 표정으로 이정을 바라봤다.

약간 발그스름한 얼굴로 저를 바라보는 가을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가슴이 다 떨리는 이정이었다.

 

 

이정: 있잖아...

가을:(고개 갸웃) 무슨 소원인데 그래요?

이정: 오늘 같이 자면 안될까?

 

 

가을은 갑자기 몰려오던 술기운이 확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순식간에 변하는 가을의 얼굴을 보면서 이정은 재빨리 덧붙였다.

 

 

이정: 아니, 그냥 잠만 같이 자자고.

가을:(당황) 갑자기 왜 그래요? 우리 올해 안으로 결혼하기로 했잖아요.

   어머니가 결혼 날짜 알아보고 있는 중인데...

이정: 오늘은 내 생일이니까 잠이 들 때까지 네 얼굴 보고 싶어서 그래.

가을: 그럼 오빠 잠들 때까지 옆에 있어줄게요.

이정: 아니, 너도 지금 약간 취했으니까 분명히 그랬다간 그냥 의자에서 잘 테니까...

   그냥 너 편하게 옆에서 같이 자는 게...

가을:(정색) 괜찮아요. 그냥 오빠 잘 때까지 버틸게요.

 

 

예전의 냉혈 카사노바는 정말 어디로 갔는지 이정은 가을의 정색하는 얼굴을 보니 할 말이 제대로 생각나지 않았다.

결국 가을의 손을 잡고는 애원조로 말하는 이정이었다.

 

 

이정: 절대로 이상한 짓 안할게. 약속해, 그냥 손만 잡고 잘게.

가을: 오빠...

이정: 안나 수녀님하고 약속했어. 널 꼭 지켜주겠다고. 그러니까 걱정 안해도 돼.

 

 

가을은 뜻밖의 상황에 너무 난감했다.

어릴 적부터 안나 수녀로부터 교육받은 게 있어서 가을에게 결혼 전 순결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었다.

하지만 이정의 생일인데 같이 잠만 자게 해달라는 소원을 단칼에 거절하는 것도 너무 매정한 행동 같았다.

그냥 잔디와 같이 자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는 걸까 싶어 약간 심난해졌다.

 

고민에 빠진 가을의 표정을 보고 이정은 불쌍한 강아지 같은 눈빛으로 다시 한 번 부탁했다.

 

 

이정: 맹세할게. 절대로 안나 수녀님과 한 약속 깨지 않을게.

가을:(반신반의) 정말 맹세하는 거죠?

이정:(기다렸다는 듯) 응!

 

 

결국 이정의 눈빛에 지고 만 가을은 한숨을 쉬고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가을: 알았어요. 대신 오늘 밤만 특별이에요. 오늘은 오빠 생.일.이니까.

이정:(재빨리) 알았어.

 

 

 

행여나 가을의 맘이 변할까 싶어 이정은 재빨리 자신의 방으로 가서 샤워를 하고 가을의 방으로 들어갔다.

정말 술기운이 몰려왔는지 가을은 어느 새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이정은 조심스럽게 가을의 옆자리에 앉아 이불을 들추고는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소리에 가을이 놀라 눈을 뜨고 이정을 바라봤다.

 

 

가을: 왜 웃어요?

이정: 끄윽 끄윽, 네 잠옷이..(웃음을 참느라 말을 못한다)

가을:(어리둥절) 리라 언니가 일본 출장가서 사온 선물인데, 이거 귀엽지 않아요?

 

 

이정이 웃느라 이불을 계속 제쳐두자 가을의 헬로 키티 파자마가 드러났다.

헬로 키티가 잠옷 주인과 너무 잘 어울린 탓에 가을이 10대 소녀처럼 보일 정도였다.

너무나도 소녀같은 가을의 모습에 그나마 남아있던 늑대 본성이 싹 사라지는 이정이었다.

 

 

‘언제 키워 잡아먹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면서 이정은 가을의 옆에 누웠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옆으로 누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가을:(짐짓 뾰로통) 이제 만족해요?

이정:(만족스럽게) 응. 네 얼굴 보면서 자니까 너무 좋다.

가을:(약하게 웃으며) 조금만 더 참아요... 얼마 안 남았어요...

이정: 난 그래도 어머니가 최대한 빨리 결혼 날짜 잡았으면 좋겠어.

가을: 한 번에 너무 많은 거 바라지 마요. 그나마도 아빠가 겨우 양보한 거잖아요.

 

 

 

이정은 할아버지에게 가을의 아버지를 만나달라고 부탁해야하나 심각하게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나현이 재용을 직접 만나 눈물로 애원한 끝에 결국 올해 안으로 결혼식을 올리기로 합의를 봤다.

물론 나중에 재용은 여우에 홀린 기분이라고 나중에 투덜거렸지만, 나현이 재빠르게 일가 친척들에게 결혼 소식을 알리고 식장이니 예물이니 하면서 결혼식 준비를 진행해 확실히 못을 박아버렸다.

 

 

준표는 이정과 가을의 결혼 소식에 자극을 받아서는 올 여름에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가족과 잔디에게 통보해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지만 결국 준표의 뜻대로 8월에 신화호텔에서 결혼하기로 했다.

잔디는 휘말리듯이 결혼 날짜를 잡게 되어 불만이었지만 준표가 올 가을에 출범하는 신화 그룹 산하 복지재단을 설립해 합류시키기로 약속해서 결혼식을 하기로 합의를 봤다.

 

 

지후는 리라와 함께 이정과 가을의 결혼식 때 축하 연주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정을 놀리듯이 10월에 결혼하면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연주해주겠다고 말해 결국 가을도 나현에게 가급적이면 10월이 좋겠다고 말을 했다.

물론 이정은 끝까지 지후가 마수를 뻗치는 것 같아 약간 찜찜했지만 가을이 워낙 좋아하는 바람에 말도 못했다.

 

 

우빈은 그저 준표와 이정에게 결혼이라는 수렁으로 빠져들었다고 놀리기에 바빴다.

하지만 속으로는 친구들의 행복을 누구보다도 기뻐한다는 것을 알기에 두 사람도 우빈에게 빨리 짝을 찾으라고 조언만 할 뿐이었다.

 

 

 

 

지금 서울에서는 준표와 지후, 우빈이 이정과 가을의 합방을 놓고 내기를 벌이고 있다는 걸 까맣게 모르는 채 이정은 금방 새근새근 잠이 든 가을의 얼굴을 쓰다듬다가 가볍게 입을 맞췄다.

 

 

이정:(혼잣말) 행복하다... 정말로...

 

 

이정은 손을 뻗어 가을의 손을 잡으면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내일은 또 함께 어디를 가서 어떤 즐거움을 맛볼까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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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아이들은 모두 다 행복해지겠죠? 그럴 거라고 믿습니다^^

이제 정말로 완전히 '기억의 주인' 시리즈는 막을 내립니다.

그동안 많이 사랑해주신 여러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추석날 송편이랑 맛있는 음식 드시고 달님에게 소원빌면서 즐겁게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꾸벅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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