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약속

약속, 영원으로 만들다_Intro

지혜의 여신 2009. 7. 5. 18:57

"정이와 어머니 부탁해."
"오빠!"

 

가을은 결국 울음을 터트리며 일현을 불렀다.
일현은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가득 담긴 얼굴로 눈물을 흘리는 가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도 겨우 열일곱밖에 안됐는데 이렇게 큰 짐을 주어서 정말 미안해.
 나중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으면 제일 먼저 연락해줄게.
 미안하다, 우리 예쁜 동생."
"나,난... 오빠가 정말 좋은데... 꼭... 이렇게 떠나야만 하는 거야?"

 

일현은 한숨을 내쉬고는 허리를 숙여 가을과 눈높이를 맞췄다.

 

"가을아... 넌 나를 아빠처럼 좋아하는 거야... 단순한 동경이라구..."
"그럼 어때서? 지금까지 현이 오빠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 하나도 없었는데...
 오빠한테 내가 너무 어리광부려서 이제 내가 귀찮은 거야?"
"그렇지 않아... 널 위해서이기도 해... 이렇게 내곁에만 있으면 진정한 네 인연이 와도 알아보지 못하면 안되잖아."
"앞으로 어리광부리지 않을게. 오빠한테 시집간단 말도 안할게. 그러니까 가지 마, 응?"

 

가을은 일현의 손을 잡으며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항상 환하게 웃으며 자신과 동생 이정, 어머니 나현에게 빛을 주었던 가을이었다.
이정만큼 친동생처럼 사랑했던 가을이 이렇게 울며 매달리자 일현의 마음도 흔들렸다.
하지만 일현은 가을의 작은 손에서 커다란 제 손을 가볍게 빼내고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가을아, 지금 난 떠나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너도, 나도, 정이도, 어머니도 모두 불행해져."
"흑... 떠나지 않고 그냥 도예 안한다고 하면 안돼? 그럼 정이가 얼마든지 후계자할 수 있잖아."
"후우~ 나도 그렇게 간단했으면 좋겠어."

 

일현은 슬프게 웃고는 가을의 눈물을 다정하게 닦아주었다.

 

"가을아, 염치없는 부탁인 줄은 알지만 나랑 약속해 줘. 내가 없는 동안 정이와 어머니 돌봐주겠다고."
"약속 안하면 안갈거야?"
"아니, 약속 안해도 난 떠날 거야.. 하지만 네가 약속하지 않으면 난 내내 무거운 마음으로 지내게 될 거야."
"오빠 너무해..."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가을아... 그렇지만 너 외엔 부탁할 사람이 없어..."

 

가을은 있는 힘을 다 해 울음을 그쳤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항상 의지했고 너무나도 좋아했던 일현이 저렇게 슬픈 모습으로 부탁을 하는 터라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일현은 가을의 흐느낌이 잦아들자 조심스럽게 얼굴을 살폈다.

 

"가을아, 약속해주는 거지?"
"응... 그치만 꼭 자주 연락해야 해. 안그럼 나도 버티지 못할 거야."
"고맙다."

 

 

겨울이 끝나가던 2월말의 저녁, 스무살 일현은 열일곱 가을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한때 자신의 운명이라 믿었던 도예와 우송을 버리기 위해, 저대신 가마신의 선택을 받은 이정의 앞날을 위해, 가을에게 자신과의 결혼약속이라는 굴레를 벗겨주기 위해 떠나는 길이었다.

 

일현네의 어두움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는 가을로서는 일현의 선택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