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5일 한국은 어린이날이지만 그날 영국은 Bank holiday였다.
정확히 뭐하는 휴일인지는 몰랐지만 덕분에 옥스퍼드에서 몇 개 대학이 문을 닫았고, 가장 가고 싶었던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도 문을 닫아서 해리 포터 영화에 나오는 호그와트 대연회장과 복도 구경을 못했다.
영국 기차가 비싸단 얘기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바가 있어 무조건 버스를 검색했는데 다행히 편도 두 시간밖에 안걸리는데다 이벤트인지 뭔지 암튼 엄청 저렴하게 예매를 했다.
빅토리아 코치역에서 좀 헤매는 바람에 예매한 버스를 내 눈앞에서 놓쳤는데 다행히도 추가요금없이 한 시간 뒤에 출발하는 버스를 탔다.
풍경 구경을 위해 2층 맨 앞자리에 올라탔는데 어떤 아주머니도 내 옆에 앉았다.
생각해보면 그 아주머니는 그 버스 2층에서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내게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버스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수첩을 꺼내 이틀간의 일정을 열심히 정리했고 버스가 아직 런던을 벗어나기 전에 풍경을 둘러볼 수 있었다.
그리고 옆자리 아주머니는 내게 슬며시 말을 걸었다.
나야 항상 현지인과의 대화를 환영하니 신나게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마침 창밖에는 웸블리 축구장이 멀리 보였는데 아주머니가 웸블리 구장이라고 알려주니까 나도 마침 미리 읽었던 기사가 생각나서 아는 체를 했다.
"저기가 FA컵 결승전이 열린다는 새 경기장 맞지요?"
"응 어떻게 알았니?"
"저 축구를 좋아해서 영국 오기 전에 기사를 읽었어요."
"너도 맨유팬이니?"
이 말을 들은 순간 내가 박지성때문에 맨유팬이 된 한국인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질까봐 초스피드로 반응했다.
"아니오, 전 수원팬입니다. 박지성을 좋아하지만 버젓이 내 팀이 있는데 맨유까지 응원하진 않아요."
"그래, 축구는 모름지기 축구장에 가서 직접 응원해야지. TV로 보면 재미없어."
화기애애하게 축구이야기를 했는데 알고보니 이 아주머니 예전에 리버풀팬이었댄다..
맨유팬이었으면 아쉬워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우리 동네 축구팀 팬이라고 하니까 더 좋아하신 것도 같았다.
2018년 11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본 이후 웸블리 경기장하면 라이브 에이드와 퀸이 생각난다.
그 당시 퀸을 지금처럼 좋아했다면 그 영국 아주머니와 퀸에 대해서도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좀 아쉽긴 하다.
그러나 2008년 5월 영국 여행을 즐기면서 내 mp3에는 비틀즈 베스트 앨범만 있었을 뿐...
해리 포터, 셜록 홈즈, 비틀즈, 미션 임파서블 촬영지, 홍차, 축구, 마이 페어 레이디, 오페라의 유령...등이 당시 내 관심사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쉽긴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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