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적당히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지혜의 여신 2024. 11. 20. 22:30

동생의 강력 권유로 보게 된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정통 로맨스를 다룬다.

가을이 되면 자동 반사적으로 생각이 난다.

그 드라마에는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 참 예쁘게 그려진다.

아름다운 모습이 많지만 그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4회에 나온다.

 

박준영은 4회에서 채송아의 생일 파티가 끝난 뒤 채송아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무' 라는 말 있잖아요. 어떤 정도를 훨씬 지나쳤을 때 쓰는 말. 어떤 사랑이 힘든 건 그래서가 아닐까해요.

적당히 사랑해야 하는데 너무 많이 사랑해 버려서

그러니까 다음에는 '너무 많이'가 아니라, 알맞게, 적당히, 지나치지 않게 해요. 그 사랑이란 거.

 

단원들은 이런 말을 하는 박준영에게 '모쏠티가 난다' 내지는 '정경이를 숨길 수 있을 만큼만 사랑하기 때문에 저런 말을 하는 거다'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내가 보기에 박준영은 가족(정확히는 엄마)를 너무 많이 사랑하고, 피아노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봤다.

아버지는 원래 사업하다가 망하기를 반복했는데 그로 인해 박준영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어도 아버지의 사고를 수습하느라 돈을 모을 새가 없었다.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막지 못하고 아들이 벌어주는 연주비에 익숙해져서 아들이 얼마나 힘든지 알지 못할 때, 박준영은 속으로 아버지 복이 없음을 한탄했으리라.

다른 장학생 혹은 동창들 중에서 가족들의 헌신을 받는 집도 많았을 것이고 자신이 부모님 ATM이라고 수근대는 소리도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나라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기는 커녕 착취하고 고통만 주는 부모님을 외면하지 못한 자신에 대해서 자괴감이 엄청나게 많이 들었을 것 같다.

 

그런 박준영이 채송아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는데 그 전에 유일하게 사랑했던 존재는 피아노였던 것 같다.

피아노는 여섯 살때부터 외로움을 달래준 유일한 친구였고, 열 네살에 아버지 때문에 그만둬야 할 때에는 생애 처음으로 절망감을 느꼈고, 이정경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이를 덜어내기 위해 친구가 되었을 지언정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존재였던 것 같다.

피아노를 사랑한 대가로 유교수의 지독한 수업을 견뎌냈고 죽기보다 싫은 콩쿠르를 계속 참여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복용한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는 어마어마할 것이고, 쇼팽 콩쿠르 1위없는 공동2위 수상 이후에는 호텔을 전전하면서 외로움과 고독함이 추가되었다.

하지만 피아노를 치는 기쁨을 잃었을지라도 박준영에게 피아노는 너무 많이 사랑하는 존재였기 때문에 절대 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5회에서 토크콘서트를 한 후 박준영은 채송아에게 속마음을 말하는데 이 때 그는 '재능은 없는게 낫다'면서 자신의 재능을 저주하지만 피아노를 저주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박준영은 브람스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고 브람스는 연주도 안했던 것 같다. (박준영은 브람스를 연주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박준영 눈에 브람스는 클라라를 '너무 많이' 사랑했기 때문에 평생 클라라의 곁에 머물러도 그 사랑을 보답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자신에게 그런 미래가 주어질까 두렵거나 혹은 그런 미래가 이미 정해졌다고 생각해서 좌절했던 것처럼 보였다.

 

그런 박준영의 마음을 보여주는 노래로는 Queen의 "Too much love will kill you"이 제일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채송아를 만나고 사랑하기 전의 준영씨는 지나친 사랑은 결국 자신을 죽일 뿐이라는 걸 직감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채송아를 잃은 후에는 서서히 말라죽어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 노래가 매우 자기 예언적인 노래가 될 뻔 했지만, 마지막 회에 박준영이 용기를 내어 고백을 하고 자신의 마음을 따라가는 연주를 한 덕분에 채송아도 되찾고 사랑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헤어진 후 다시 고백할 때 박준영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무 오만했어요. 적당히만 사랑하는 거... 난 못하겠어요."

 

원곡은 브라이언 메이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외동인 자신에게 친형제나 다름없던 프레디 머큐리가 죽기 직전이라 정신적으로 매우 매우 힘들었을 때 부인과 이혼까지 해서 너무 힘든 마음을 담은 곡이라 처음 들을 때부터 매우 좋아했다.

 

 

I'm just the pieces of the man I used to be. 난 이제 예전의 나의 조각에 불과할 뿐이에요.
Too many bitter tears are raining down on me. 쓰라린 눈물을 비오듯 너무 많이 흘렸어요

 

I'm far away from home. 난 집을 떠나 멀리 왔어요
And I've been facing this alone for much too long. 그리고 너무도 오랫동안 세상을 혼자 맞서 왔죠

 

I feel like no one ever told the truth to me about growing up 어른이 되어 힘겹게 살아가는 것이
and what a struggle it would be. 어떤 것인지에 대해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던 것 같아요

 

In my tangled state of mind. 혼란한 머리 속에선 내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I've been looking back to find where I went wrong. 돌이켜 생각해 왔었어요

 

Too much love will kill you. 너무 깊은 사랑은 해로워요
If you can't make up your mind. Torn between the lover. And the love you leave behind. 만약 사랑하는 사람과 뒤에 떠나보낸 사람 사이에서 고민한다면요

 

You're headed for disaster. 당신은 파멸을 향해 가고 있는 거에요
Cause you never read the signs. 표지판을 볼 수 없기 때문이죠
Too much love will kill you every time. 너무 깊은 사랑은 언제나 해로워요

 

I'm just the shadow of the man I used to be. 난 단지 예전의 나의 그림자에 불과해요
And it seems like there's no way out of this for me. 그리고 내가 여기서 빠져나갈 방도가 없는 것 같아요

 

I used to bring you sunshine. 당신께 밝은 햇빛을 안겨드리던 내가
Now all I ever do is bring you down. 이젠 실망만 시켜드리는군요

 

How would it be if you were standing in my shoes. 만약 당신이 나라면 어떨까요
Can't you see that it's impossible to choose. 맘대로 선택할 수 없다는걸 당신은 모르나요.

 

No, there's no making sense of it. 그래 봤자 아무 의미 없어요
Every way I go I'm bound to lose. 내가 어떻게 하든지 난 실패하게 되어있나 봐요

 

Too much love will kill you. Just as sure as none at all. 너무 깊은 사랑은 고통스러워요 너무도 확연한 사실이에요
It'll drain the power that's in you. Make you plead and scream and crawl. 사랑은 당신의 기운을 빼버리고 간청하고 애원하게 만들죠

 

And the pain will make you crazy. 그 고통에 당신은 미치게 될걸요
You're the victim of your crime. 당신이 했던 사랑의 희생자인 거에요

 

Too much love will kill you every time. 너무 깊은 사랑은 언제나 해로워요

Too much love will kill you. It'll make your life a lie. 사랑에 너무 빠지면 삶을 거짓으로 만들어 버려요

 

Yes, too much love will kill you. 그래요, 너무 깊은 사랑은 해로워요
And you won't understand why. 어느 길로 가야할지 모르게 되죠

 

You'd give your life. You'd sell your soul. 삶을 팽개치고 영혼까지 팔게 될 거에요
But here it comes again. 그런 사랑이 다시 내게 다가오는군요,
Too much love will kill you in the end. 결국엔 그 지독한 사랑으로 난 파멸하게 될 거에요.

 
덤으로 프레디 머큐리 사후 브라이언 메이와 파바로티도 함께 이 곡을 부른 영상을 올린다.